[특파원코너] 중국 경제통계 '함정'

중국에서 대약진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 가을.

당시 부총리였던 덩샤오핑(등소평)은 허베이(하북)성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논 1무(약 6백60평방m)에서 벼 1만근(6천kg)을 생산했다는 보고였다.

당시 평균 생산치보다 무려 7배나 높은 기적과 같은 수치였다.

보고서에는 사회주의 농법의 승리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그는 즉각 현지로 달려갔다.

담당자들이 보여준 논은 벼로 빼곡했다.

덩은 벼 한 포기를 뽑아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뿌리가 반쯤 잘려있었다.

누군가가 보고용으로 다른 논에서 벼를 옮겨다 꽂아 넣은 것이다. 그는 실적과시를 위해 허위보고를 올리는 관리들의 행태에 치를 떨었다.

덩은 이 일로 계획경제의 맹점을 절감했고 이는 후일 개혁개방 정책의
동력이 됐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지금.

과연 중국 대륙에서 허위보고, 허위 통계는 사라졌는가.

아니다.

최근 중화공상시보가 허베이성 국유기업의 황당한 회계라는 제목으로 지면
한쪽에 보도한 기사가 이를 증명한다.

허베이성 정부는 작년 말 11개 주요 도시 94개 국유기업을 대상으로
회계감사를 실시했다.

각 도시에서 총 3백여명의 감사관을 뽑아 다른 도시 기업으로 파견해
조사토록 했다.

당초 회계로는 94개 기업중 65개가 흑자, 나머지 29개가 적자였다.

그러나 감사관의 조사결과는 달랐다.

흑자 낸 기업이 조사대상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0개에 불과했다.

전체 순익도 당초 보고의 77%에 그쳤다.

더욱 놀랄만한 일은 조사대상 기업의 72%가 회계기준을 지키지 않고
결산서를 작성했다.

덩샤오핑이 살아있었다면 또 한번 치를 떨 일이다.

분식결산이 허베이성 국유기업에서만 이뤄지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허베이성 사례는 오히려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각 기업은 당초 계획치를 억지로라도 맞추기 위해 기업 책임자의 영전을
위해 또는 적자기업을 과감히 정리하려는 정부의 국유기업 개혁 칼날을
피하기 위해 분식결산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작년 국유기업 순익이 약 9백억위안(1위안=1백40원)에 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년보다 무려 70%가량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지난해 국유기업 실적 통계에는 허베이성 기업과 같은 분식결산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정키 어렵다.

우리가 중국의 경제통계를 주의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