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에로티시즘의 만남 .. 한승원 새 장편소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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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부터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닷가 율산마을에서 책읽고 글쓰는 일에 전념
해 온 작가 한승원(61)씨.
그는 바다 쪽으로 난 벽면을 통유리로 터놓고 하루종일 해풍과 파도소리를
벗삼아 산다. 바다가 하얗게 뒤집히고 으르렁거릴 땐 술에 얼근히 취해 촛불 사이에서
신들린 무당처럼 북이나 장구를 두들겨 대고 도깨비처럼 춤을 추기도 한다.
전축에는 케니 지나 파바로티, 셀린 디옹을 집어넣고 볼륨을 한껏 올린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뻘려들어간 상태에서 그는 농염한
장편소설 "사랑"(문이당)을 빚어냈다. 이 작품은 1998년 계간 "문예중앙"에 발표된 뒤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작가가 "고개틀고 등돌리는 말들을 그동안 갈고 닦아주면서 화해를
도모하느라 씨암탉처럼 품고 뜸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때 깨알같은 글씨로 전재된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말의 품새나 구성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회진포구 사람들의 눅진한 생을 닮았다.
삶의 원형질과 농익은 사랑이 물굽이쳐 흐르는 곳에서 뿌리깊은 한과
몽상적인 에로티시즘이 만나 절묘한 미학을 일궈낸다.
황홀한 교미 끝에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수컷 사마귀의 모습을 그린 첫
장면은 생명의 순환고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는 사랑을 "우주적 힘의 율동"이라고 부른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는 두 명의 "한승원"과 "지야몽"이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한승원에게 어느날 지야몽이 찾아와 "장흥 판타지"라는 소설을 내놓는다.
지은이는 그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비행기 사고로 숨진 사람이다.
"장흥 판타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죽인 후 유골 가루를 들고 고향으로
가던 한승원과 레스토랑 주인 지야몽의 관계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양반 아버지와 백정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지야몽과 동병상련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배경에 놓인 소재들도 관능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안개는 "이내빛 망사 속치맛자락으로 거대한 물너울을 덮고" 있다.
자동차는 "체온이 있고 살냄새를 풍기며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백마"로
묘사된다.
특히 마당 잔디밭에 놓인 둥근 돌은 "우윳빛 알"이다.
이 돌은 작품 끝부분에서 "알 안으로 그 여자와 함께 스며 들어가 천년 뒤의
어느날 한밤중에 거대한 시조조로 깨어나 우주의 무한시공을 날아다니"리라는
은유로 이어진다.
작가의 말처럼 "뜨거운 사랑 행위는 근원회귀의 구심력과 번식의 원심력
이라는 두개의 모순대립 구조"로 이뤄져 있다.
모든 생명체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달콤한 어지러움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이 죽음과 환생의 순간체험이라는 얘기다.
"사랑은 우리들 고달픈 삶의 버팀목이자 존재 이유이며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인생의 비밀 작법이지요"
그는 사랑이라는 녹록찮은 주제를 한 번에 다 품을 수 없어 후속격인 중편
"연꽃얼굴과 나귀다리"를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은 계간 "21세기문학" 봄호에 실릴 예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4일자 ).
해 온 작가 한승원(61)씨.
그는 바다 쪽으로 난 벽면을 통유리로 터놓고 하루종일 해풍과 파도소리를
벗삼아 산다. 바다가 하얗게 뒤집히고 으르렁거릴 땐 술에 얼근히 취해 촛불 사이에서
신들린 무당처럼 북이나 장구를 두들겨 대고 도깨비처럼 춤을 추기도 한다.
전축에는 케니 지나 파바로티, 셀린 디옹을 집어넣고 볼륨을 한껏 올린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뻘려들어간 상태에서 그는 농염한
장편소설 "사랑"(문이당)을 빚어냈다. 이 작품은 1998년 계간 "문예중앙"에 발표된 뒤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작가가 "고개틀고 등돌리는 말들을 그동안 갈고 닦아주면서 화해를
도모하느라 씨암탉처럼 품고 뜸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때 깨알같은 글씨로 전재된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말의 품새나 구성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회진포구 사람들의 눅진한 생을 닮았다.
삶의 원형질과 농익은 사랑이 물굽이쳐 흐르는 곳에서 뿌리깊은 한과
몽상적인 에로티시즘이 만나 절묘한 미학을 일궈낸다.
황홀한 교미 끝에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수컷 사마귀의 모습을 그린 첫
장면은 생명의 순환고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는 사랑을 "우주적 힘의 율동"이라고 부른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는 두 명의 "한승원"과 "지야몽"이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한승원에게 어느날 지야몽이 찾아와 "장흥 판타지"라는 소설을 내놓는다.
지은이는 그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비행기 사고로 숨진 사람이다.
"장흥 판타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죽인 후 유골 가루를 들고 고향으로
가던 한승원과 레스토랑 주인 지야몽의 관계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양반 아버지와 백정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지야몽과 동병상련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배경에 놓인 소재들도 관능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안개는 "이내빛 망사 속치맛자락으로 거대한 물너울을 덮고" 있다.
자동차는 "체온이 있고 살냄새를 풍기며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백마"로
묘사된다.
특히 마당 잔디밭에 놓인 둥근 돌은 "우윳빛 알"이다.
이 돌은 작품 끝부분에서 "알 안으로 그 여자와 함께 스며 들어가 천년 뒤의
어느날 한밤중에 거대한 시조조로 깨어나 우주의 무한시공을 날아다니"리라는
은유로 이어진다.
작가의 말처럼 "뜨거운 사랑 행위는 근원회귀의 구심력과 번식의 원심력
이라는 두개의 모순대립 구조"로 이뤄져 있다.
모든 생명체는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달콤한 어지러움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이 죽음과 환생의 순간체험이라는 얘기다.
"사랑은 우리들 고달픈 삶의 버팀목이자 존재 이유이며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인생의 비밀 작법이지요"
그는 사랑이라는 녹록찮은 주제를 한 번에 다 품을 수 없어 후속격인 중편
"연꽃얼굴과 나귀다리"를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은 계간 "21세기문학" 봄호에 실릴 예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