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6일자) 걱정스러운 올해 임금협상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올해 재계의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5.4%로
제시함으로써 임금인상을 둘러싼 노사간의 마찰이 치열해질 것 같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13.2% 및 15.2%와 격차가 너무 커 원만한
타협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동계는 총선을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임금투쟁을 예년보다 한달
이상 앞당겨 정치투쟁과 병행하는 한편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오는 5월께
총파업을 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재계와 노동계의 인상률은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나 서로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내세우고 있다.

이익을 다투는 세력들은 서로 아전인수식 주장을 내세우게 마련이므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차이가 10%포인트에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타협의 여지가
적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임금인상이 노동생산성 향상의 범위로 국한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명목임금이 노동생산성을 초과해 오르게 되면 기업의 채산성이 나빠지고
물가상승을 초래해 결국은 실질임금을 떨어뜨리고 기업의 투자여력을 잠식해
고용기회를 축소시킨다. 기업의 경쟁력도 약해져 아예 고용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지난 90년대 중반의 고비용 저효율 체제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임금을 동결당하거나 삭감당했던 근로자들이 경제가
웬만큼 회복된 지금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만큼 튼튼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도 금융과 기업 등 각 분야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와중에서 원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과 원유가의 급등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사가 대립하며 노동계가 격렬한 투쟁에 나설 경우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의 대외신인도만 떨어질 뿐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계에는 힘보다는 대화를 통해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전략을 택할 것을 권하고 싶다.

기업의 지불능력을 초과하는 고임금이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의 하나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백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생각하면 임금인상이 신규고용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개인별.집단별 성과보상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임금 말고도 실적에
따라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임금체계의 단순화는 노사가 함께 논의해야 하며,물가를 안정시켜 근로자
들의 실질소득을 지켜주는 일은 정부가 맡아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