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래플스호텔' 소설로 출간..무라카미 류 '눈부시게...'

"그이는 카메라맨으로 성공한 유부남이었어요. 하지만 전쟁터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말았죠. 그를 구해줄 사람은 오직 저뿐이예요. "그이"는 거짓말,
"유부남"은 진실, "구해줄수 있다"는 진실, "오직 저뿐"은 거짓말. 아니
"유부남"은 거짓말, "구해줄수 있다"도 거짓말, "오직"은 진실, "저"는
거짓말"

무라카미 류의 장편 "눈부시게 찬란한 내안의 블랙홀"(큰나무,7천원)은
베트남 종군기자 출신의 사진작가와 여배우의 사랑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열대의 아름다운 백일몽"이라고 명명한 이 소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영화 "래플스호텔"을 소설로 고쳐 쓴 것.

무라카미 류의 이전 소설처럼 엽기적이거나 변태적이지 않다.

즉흥환상곡처럼 감성에 직접 호소한다. 영화의 소설화라는 전대미문의 작업을 시도한 무라카미는 작품을 14 장면
(Scene)으로 나눈뒤 같은 사건을 각자 입장에서 서술하게 했다.

뉴욕#1 가리야 도시미치(남주인공), 말레이시아#2 혼마 모에코(여주인공)
하는 식이다.

반토막난 베트콩시체에 카메라를 들이댔던 남자. 귓속에 쓸쓸한 도시를 담고 사는 여자는 "나를 정말 많이 찍어 달라"며
눈물 흘린다.

싱가포르에 있는 래플스호텔은 소설가 서머셋 몸이 머물렀다고 하는
식민지풍의 고건물이다.

세계미식가협회 회원이기도한 무라카미는 요리와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끼워넣으며 아스라한 풍경화를 그려낸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은 남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고 두번째는 나를
오해하는 것"이란 여자의 고백이 메아리로 남는다.

출판평론가 김갑수씨는 "무라카미 류를 읽는 것은 상처에 탐닉하는 일"
이라 말했다.

소설가 하재봉씨는 "섹스와 마약에 통달,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삶이
무라카미 류의 꿈"이라고 지적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