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외이사제 도입의 참뜻 .. 이동호 <재미변호사>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는 참뜻은 무엇인가.

대기업 지배주주의 독단 경영에 쐐기를 박고 소수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닌가. 언제나 말보다 실천이 어렵다.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분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실천한다는 큰 뜻을 갖고
기업의 공익성만 주장하다가는 "영업이익"이라는 "알"을 낳아야 할 어미
닭을 잡을까봐 걱정이다.

사외이사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이사회와 실무 경영진과의 사이에
엄격한 권한의 분립이 확정돼야 한다. 즉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는 기업경영에 있어 최고 의사결정자가 되고
경영진은 이사회에서 결정된 경영방침의 있는 그대로를 단순히, 그리고
착실히 실천에 옮기는 경영실무자가 돼야 한다.

즉 어디까지가 경영정책 사항이고 어느 것이 정책실행 사항인지가 처음부터
정관에 명시돼야 한다.

구체적인 업무분담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두 조직간의 상충과 마찰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간 정부는 사외이사의 "전문성"에서 오는 기여도를 많이 강조해 왔다.

이것은 매우 모호한 기대이다.

어느 한가한 "돈 버는 전문가"가 남의 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안주하려고나
하겠는가. 흔히 관계기술 경험이 있는 사람 또는 그 계통을 전공한 학자를 생각하고들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세상 살면서 어느 지식, 어느 기술, 어느 경험 하나가 딱 부러져서
"돈 벌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는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좋다.

꼭 무슨 학위나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분이더라도 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경력이
많은 분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만 팔방미인만은 절대로 안 된다.

그간 한국 땅에서는 요령 좋은 사람들만 줄기차게 세월이 가고 정권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 똑같은 얼굴을 여기저기 염치도 없이 내밀고 왔다.

어디선가 또 한번 사외이사로 등장하려고 단기 교육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외환위기를 불러 온 장본인들인 낡은 관료와 구세대의 경제인들에게 새
천년의 경제 틀을 다시 맡길 수는 없다.

사외이사는 취임 순간부터 그 기업과는 상거래 행위를 포함한 일체의 거래
행위를 끊어야 한다.

당사자간에 이해상충이 있을지도 모르는 의심쩍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런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는 기회는 무조건 기피해야 한다.

이 원칙은 미국에서 아주 엄격히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경우 기피우선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기
는 커녕 도리어 개인 이익을 위해 그 기피해야 할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듯하다.

일반 기업인들은 물론 변호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마저 오히려 그런 인연을
기화로 사건이나 일을 맡으려고 큰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고문직을 맡는
경우가 허다하며 사회도 용인하는 것은 물론 그런 것쯤은 당연시하는 듯하다.

이것은 정말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이해상충의 경우 아주 작게나마 미심쩍은 일이 있으면 처음부터 철저하게
그 사건 수임이나 기회 포착에서부터 이해상충의 위험은 원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IMF 관리체제 초기 서양 사람들이 비웃던 사이비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의 불명예를 근절할수 있겠다.

이해상충의 원칙과 똑같이 도입해야 할 것인 기업기밀 (trade secret)
보호의 원칙이다.

사외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취득한 기업정보나 기밀은 개인 이득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된다.

또 해당 기업의 주식 매입 또는 매도 등의 주식거래행위도 일절 중단해야
된다.

사외이사라는 신분에서 얻은 기업정보를 개인 치부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제도 도입과 더불어 이 기회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모든 행위의
과정과 내용을 정확히, 그리고 자세히 기록하고 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이 땅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사회 기록이 있었던 사실 그대로가 완전하게 남고 그 기록대로 죄 있는
자, 비리 있는 자, 손 시커먼 자는 언제이건 꼭 벌받게 한다면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부조리도 다 함께 없어질 것이다.

죄 있을 때에는 필히 벌을 받는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모두가 공염불이고 도로아미타불일 뿐이다.

이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기업이나 사외이사
로 영입되는 이사분들 모두 기업내, 그리고 사회안에서 갖는 사외이사제도의
존재의의를 처음부터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사외이사제도는 절대로 새 법망을 피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그저 이름이나
내고 매달 쉽게 부수입이나 생기게 하는 제도가 돼서는 안 된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거창한 기치를 내 건 사외이사제도의 건전한 안착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