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컴퓨터 보안업체 '인젠' .. '전산망이 뚫렸다' SOS

지난 1998년 여름 국내 한 대기업의 전산망이 뚫렸다.

국내 최고 수준의 보안시스템을 자랑하던 이 회사 전산시스템은 해커들에게
전산망 운영의 모든 권한을 내줘야 했다. 전산망을 유린한 해커들은 보안업체 인젠의 타이거팀.

타이거 팀은 보안시스템의 취약점을 점검키 위해 공개적으로 해킹하는 팀을
말한다.

이 회사로부터 해킹을 의뢰받은 또 다른 보안업체는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불과 세시간만에 해킹에 성공한 인젠 때문이었다.

인젠에는 해킹의 고수들이 포진해 있다.

노정석 최재철씨 등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해커동아리 "쿠스(KUS)" 출신
해커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 1995년 포항공대 해커동아리 "플러스"와 "해킹 전쟁"을 벌여
화제가 됐었다.

인젠은 1998년 2월 최고의 해커였던 노정석씨 등이 당시 KAIST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던 임병동 사장과 함께 설립한 보안업체.

노정석씨 등 해커그룹은 개발, 임병동 사장은 대외적인 업무를 전담키로
했다. 해커의 수법을 꿰뚫어보는 기술력을 가졌던 만큼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국내에서 1~2위를 다투는 보안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인젠의 고객 명단만 보더라도 이 회사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부산은행 BC카드 현대증권 마이다스자산운용 국민생명
등 보안을 중요시 여기는 금융회사들이 인젠의 주된 고객이다.

SK텔레콤 한국통신 LG정보통신 등 정보통신 회사와 경찰청 서울시청 등
공공기관도 이 회사의 고객 명단에 포함돼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투자 제의가 몰려들고 있다.

자본금이 26억5천만원인 이 회사에 1백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벤처캐피털도
3개나 나타났다.

최근 야후 등 세계적인 인터넷 업체들의 사이트가 잇따라 해커 공격에
무너지면서 이 회사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하지만 인젠에도 어려운 때가 있었다.

약 1년간 개발을 끝내고 1998년 말에 영업을 시작, 몇개 업체에 납품했지만
이내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연구실에서 실험할 때는 별 무리가 없었는데 막상 기업의 복잡한 전산환경
에서 실행해 보니 개선할 점이 곳곳에서 발견되더군요"(김경엽 기술이사)

장애에 부딪친 인젠은 지난해 1월부터 6개월간 영업을 하지 않고 오직
개발에만 매달리기로 했다.

영업을 시작해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벤처기업으로서는 사활을 건
결단이었다.

그때까지 벌었던 돈과 빌린 돈으로 직원들의 월급과 운영비를 충당하면서
겨우겨우 버텨 나갔다.

6개월간의 개발 끝에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 제품을 마무리하고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장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 제품을 많이 팔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컨설팅 교육 등 사후관리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런 무책임한 일을 할 수 없더군요"(임병동 사장)

결국 인젠의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몇개 기업의 보안만을 담당하게
됐다.

이 때문에 인젠은 여전히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임 사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까지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결과적으로 인젠에 득이 됐다.

당시 이 회사로부터 철저한 사후 관리를 받은 업체들이 부분적인 보안제품
설치뿐 아니라 전체적인 보안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이 덕에 지난해 21억원의 매출과 6억원의 순익을 올린 인젠은 올해 1백억원
의 매출을 바라보게 됐다.

인젠은 이제 거대한 꿈을 키워 가고 있다.

전산시스템의 통합보안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건물로 따지면 방화벽은 정문을 지키는 수위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수위가 모든 사람들을 체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24시간 외부인의 행동을
감시하는 CCTV가 필요한 거죠"(임 사장)

인젠의 통합보안시스템은 건물 뿐만 아니라 건물의 각 방에 대한 보안기능
도 갖추고 있다.

완벽한 보안이 이뤄지려면 건물뿐만 아니라 각 방에도 수위나 CCTV를 둬야
하는 것이다.

인젠이 자랑하는 통합보안시스템(ESM)은 네트워크(전체 건물)와 서버(각 방)
의 보안을 한곳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해 준다.

주력 제품을 수입해 공급하는 다른 업체와는 달리 모든 제품을 자체 개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방화벽 "네오게이트", 네트워크 침입탐지시스템 "네오워처", 서버보안시스템
"네오가드"와 "시큐닉스"가 해커에 대비한 철벽수비를 보장하는 통합보안의
"방패"들이다.

인젠은 이제 눈을 세계 시장으로 돌리고 있다.

시스템 보안분야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시장을 겨냥한 제품 개발에도 나섰다.

오는 9월께 이 제품 개발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
이다.

"이글 팀은 타이거 팀의 취약점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보안체계를 만드는
팀입니다. 인젠의 목표는 어떠한 해커의 공격도 막아내는 세계 최고의 이글
팀이 되는 것입니다"

이글 팀의 야전사령관 임 사장의 포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