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국창 임방울 .. 진영욱 <한화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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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욱
앞으로의 시대는 과거와 달리 이른바 지식.정보산업이 물질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 나갈 것이며 여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간의 경쟁이 숨가쁘게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물질문명은 풍요로운 문화의 토양에서만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다.
유엔이 새로운 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주 국창 임방울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창극 "쑥대머리"가 공연돼
우리 전통가락에 목말라하던 올드팬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최근 우리 무대예술이 가벼운 터치의 뮤지컬이나 신파조의 악극, 아니면
10대 취향의 댄스뮤직에 압도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공연은 진정 값진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방울을 가지고 놀기 좋아했다고 해서 본명 대신 "방울"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한다.
선생에 대해 후학들이 "국창"이란 칭호을 붙였지만 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한 불운한 시대를 살았다. 선배 명창들은 지방관아로부터 비록 하위직이나마 벼슬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요즘 국악인들은 역시 충분하지는 않지만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영예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선생은 오로지 자생적으로 생겨난 대중적 인기의 "마지막
소리꾼"으로 일생을 살았다. 타고난 목에 피나는 노력과 수행은 선생을 당대 최고의 명창자리에 올려
놓기에 충분했다.
계면조의 탁성으로 쏟아내는 그의 소리는 우리 민족의 한을 토해 내는 울음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일제시대 선생이 취입한 쑥대머리 SP판이,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0만장 이상이나 팔려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것도 이런 우리민족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진 양성보다는 대중속에 함께 하길 즐겨했던 선생에 대한 추모와 새로운
자리 매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디지털화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시대에 창극
"쑥대머리"의 공연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
앞으로의 시대는 과거와 달리 이른바 지식.정보산업이 물질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 나갈 것이며 여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간의 경쟁이 숨가쁘게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물질문명은 풍요로운 문화의 토양에서만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이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다.
유엔이 새로운 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주 국창 임방울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창극 "쑥대머리"가 공연돼
우리 전통가락에 목말라하던 올드팬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최근 우리 무대예술이 가벼운 터치의 뮤지컬이나 신파조의 악극, 아니면
10대 취향의 댄스뮤직에 압도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공연은 진정 값진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방울을 가지고 놀기 좋아했다고 해서 본명 대신 "방울"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한다.
선생에 대해 후학들이 "국창"이란 칭호을 붙였지만 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한 불운한 시대를 살았다. 선배 명창들은 지방관아로부터 비록 하위직이나마 벼슬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요즘 국악인들은 역시 충분하지는 않지만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영예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선생은 오로지 자생적으로 생겨난 대중적 인기의 "마지막
소리꾼"으로 일생을 살았다. 타고난 목에 피나는 노력과 수행은 선생을 당대 최고의 명창자리에 올려
놓기에 충분했다.
계면조의 탁성으로 쏟아내는 그의 소리는 우리 민족의 한을 토해 내는 울음
소리에 다름 아니었다.
일제시대 선생이 취입한 쑥대머리 SP판이,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10만장 이상이나 팔려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것도 이런 우리민족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진 양성보다는 대중속에 함께 하길 즐겨했던 선생에 대한 추모와 새로운
자리 매김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디지털화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시대에 창극
"쑥대머리"의 공연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