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하늘은 다 안다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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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 가운데 보석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
20년이 넘게 수많은 손님들을 보아왔던 그는 가게문을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가격대의 보석을 사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이른 아침에 한 여자가 보석 가게로 들어섰다.
급히 세수만 했는지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얼룩이 진 트레이닝복 차림
이었다.
진열장 앞에 서서 보석에 대해 물어보는 여자에게 그는 친절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그 여자는 금 한 돈쭝도 사지 않을 손님으로 판단되었기 때문
이었다.
가게 주인의 불친절을 눈치챈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가게문을 나섰다.
그리고 맞은편의 다른 보석 가게로 들어갔던 여자는 잠시 후 값비싼 보석을
사서 유유히 사라졌다. 20년간 갖고 있던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사람은 결코 얼굴이나 차림새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백화점에 갈 때면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물건을 사러 갔다가 돈 쓰고 마음 상해 돌아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판매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난 미리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는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는 일은 번거로운 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래 전에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여자 목욕탕에 불이 나 목욕을 하고 있던 여자들이 알몸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주위 사람들이 건네는 수건으로 급히 몸을 가려야 했는데 작은 수건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이야기의 끝에 외국의 사례가 인용되었는데 외국 여자들은 수건으로
치부를 가렸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 목욕탕에 있었다면 수건으로 어느 곳을 가렸을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장끼는 위험에 처하면 우선 고개만 풀숲에 숨기는 습성이 있다.
사냥꾼들은 손쉽게 장끼를 주워 자루에 넣기만 하면 된다.
한밤중에 걸려오는 음란한 장난 전화나 컴퓨터의 통신에 떠오르는 욕설,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을 볼 때면 얼굴만 숨기고 꽁지를 드러내놓는 장끼가
떠오른다.
얼굴만 숨긴다고 다는 아니다. 아무도 내 얼굴을 못 보았을 거라고 안심할 테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이 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6일자 ).
20년이 넘게 수많은 손님들을 보아왔던 그는 가게문을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가격대의 보석을 사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이른 아침에 한 여자가 보석 가게로 들어섰다.
급히 세수만 했는지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얼룩이 진 트레이닝복 차림
이었다.
진열장 앞에 서서 보석에 대해 물어보는 여자에게 그는 친절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그 여자는 금 한 돈쭝도 사지 않을 손님으로 판단되었기 때문
이었다.
가게 주인의 불친절을 눈치챈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가게문을 나섰다.
그리고 맞은편의 다른 보석 가게로 들어갔던 여자는 잠시 후 값비싼 보석을
사서 유유히 사라졌다. 20년간 갖고 있던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사람은 결코 얼굴이나 차림새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백화점에 갈 때면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물건을 사러 갔다가 돈 쓰고 마음 상해 돌아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판매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난 미리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는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는 일은 번거로운 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래 전에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여자 목욕탕에 불이 나 목욕을 하고 있던 여자들이 알몸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주위 사람들이 건네는 수건으로 급히 몸을 가려야 했는데 작은 수건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이야기의 끝에 외국의 사례가 인용되었는데 외국 여자들은 수건으로
치부를 가렸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 목욕탕에 있었다면 수건으로 어느 곳을 가렸을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장끼는 위험에 처하면 우선 고개만 풀숲에 숨기는 습성이 있다.
사냥꾼들은 손쉽게 장끼를 주워 자루에 넣기만 하면 된다.
한밤중에 걸려오는 음란한 장난 전화나 컴퓨터의 통신에 떠오르는 욕설,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을 볼 때면 얼굴만 숨기고 꽁지를 드러내놓는 장끼가
떠오른다.
얼굴만 숨긴다고 다는 아니다. 아무도 내 얼굴을 못 보았을 거라고 안심할 테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이 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