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화제의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 박지원 연구서

"서늘함은 사마천을, 넉살좋음은 장자를 닮았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졌나 싶으면 노장으로 압도하고 다시
근엄한 유자로 돌아간다"

고전문학에 30년을 바친 중진교수가 쩔쩔 매는 이 사람은 실학파의 거목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국문학자가 해설서를 펴내고도 난공불락의 성채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잠깐
기웃거린 것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가 연암 연구서"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
9천원)를 출간했다.

무엇과 비슷하다는 것은 무엇을 베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참"일 수 없다는
주장이 제목에 내포돼있다. 예술가의 최대 모욕은 "누구를 닮았다"는 것이지만 스승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는 "출세"할수 없는 것이 현실.

선방의 죽비같은 연암의 문장은 타성에 젖은 정신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한국의 셰익스피어"라는 연암의 문장은 한마디로 천의무봉이다. 빈틈없는 문장에 깃들인 정신 세계는 도저한 깊이로 철학자를 매혹한다.

한일신학대 철학과 김영민 교수는 "동굴의 비유를 사용한 토머스 모어,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로 이어지는 서양철학과 또다른 기지를 보여준다"며
남다른 애정을 피력했다.

이번 책에 실린 "이미지는 살아있다. 코끼리의 기호학"은 예술성 높은
글쓰기의 전범이다. 중국에 사신으로 간 연암은 난생 처음 코끼리를 본다.

쓸데없이 어금니가 긴 코끼리.

연암은 소나 돼지에게 얻은 지식을 다른 동물에 적용하려 함은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는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불가능함을 코끼리로부터 배운 것이다.

정 교수는 "연암은 기호를 권력기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로 보았다는
점에서 움베르토 에코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좋은 글의 조건은 열거한 "문심과 문정",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하는
"생각의 집", 우정을 논한 "제2의 나를 찾아서"등도 중후한 잠언이다.

편역과 해설을 맡은 정교수는 "신토불이 건강상품을 선전하려던 것은
아니었다"며 "잡으려고 손을 뻗치면 나비처럼 날아가는 것이 연암"이라고
덧붙였다.

월간 "현대시학"97~99년 연재분.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