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함께 아파하지 않는 사회

최근 한국에 다녀온 재미 지식인을 만났다.

사회 사업을 하는 그는 지난 82년 미국에 건너온 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본국 방문을 한번도 하지 못했었다. 말하자면 이번 한국행은 "18년만의 귀향"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보름 남짓 지내고 돌아왔다.

정보화 혁명 덕분에 그간에도 한국내의 소소한 뉴스까지 접할 수는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그 뉴스의 이면을 살피는 기회였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곳곳에서 삶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듯 했지만, 정작 그의 가슴을 못박은
것은 한국 사회에 짙게 배있는 "소외"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도심 이곳저곳을 지나치면서 지하도와 횡단보도 등을 눈여겨 봤지만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한 보조시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배겨나기 힘든 곳"이라는 게 18년만에 찾은 조국의 첫
인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인의 소개로 방문한 강남의 한 정서 장애아 학교는 "우리 동네에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며 머리띠를 둘러매고 극력 반대하는 곳곳의 주민들에 떠밀려
아직도 "이동 학교"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더라고 했다. 어렵사리 인터뷰할 기회를 가진 한 시각 장애자에게 "앞이 보이지 않으시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십니까"라고 위로 겸 인사말을 던졌을 때 그가 들은
대답도 가슴을 저미게 했다고 한다.

"눈이 안보여 어려운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 살기가
힘드니 어려운 것이지요"라는 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이런 현장을 지켜보고 나서야 왜 장애인 자녀를 둔 한국인 부모들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이민오려고 애쓰는지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18년만에 그리던 조국을 돌아보고 온 그의 소감은 한마디로 "한국 사회는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이웃의 노약자와 장애자가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로 치부되고, 오로지 자신의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결론삼아 이런 말을 들려줬다.

"더불어 사는 삶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입니다. 장애의 문제는 언제든
자신의 주변에 닥칠 수 있는 모두의 현실이며, 무한경쟁 시대에서 누구라도
사회적 패자로 좌절의 시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얘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화두로 다가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