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골프일기] '겨울방학은 지나갔다'

고영분

방학은 끝났다. 방학이 끝나고 교문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다.

숙제를 다 하지 못해 불안초조한 아이, 좋아하는 남학생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마냥 들뜨기만 하는 아이...

방학을 마치고 첫 필드에 나서는 내 마음은 그 둘을 합쳐놓은 듯했다. 석달이 넘도록 연습은 하나도 안해 내심 불안했지만, 그리워하던 필드를
다시 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두근두근 뛰었다.

첫 티잉그라운드에 오르니 얼마나 좋던지...

익숙한 풀냄새, 바람냄새, 흙냄새... 겨우내내 얼마나 그리워하던 내음이고 풍경인지 모른다.

하지만 필드를 만난 기쁨도 잠시 "방학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의 최후를
보는 듯한 플레이가 펼쳐졌다.

다리는 힘없이 무너졌으며 어깨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립은 어수룩했고 헤드업은 다반사였다.

뒤땅보다는 토핑이 낫다던데...

토핑도 없이 땅에 한번 인사하고 볼 맞추는 뒤땅샷 일색이었다.

내 자신이 창피하고 동반자들에게 미안하여 식은 땀이 났다.

서둘러 이유를 댔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요. 석달동안 연습장 근처에도 못갔어요"라고.

나의 무안함과 동반자들의 이해를 바라고 댄 핑계였지만 그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태는 더 악화됐다.

마치 석달동안 연습안한 것을 증명이라도 해보이겠다는 듯한 플레이가
펼쳐진 것이다.

올시즌 나의 첫 필드행은 내 핑계에 내가 말려들어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방학숙제를 안해왔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괜히 먼저 내뱉었다가 친구들에게 게으른 아이로 인식되고,
자신만 더 초라해졌다.

특히 자신이 내뱉은 대로,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게 골프라면,
겨울방학의 게으름을 소리내어 말하지 말아야 겠다.

지난 겨울 핑계대지 말고, 밝고 씩씩하게 다시 새학기를 맞으면 되는
것이다. 다시 열심히 하면 될 것 아닌가.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