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시인과 촌장' .. 12년 세월 잊은 감미로운 선율

예전 그대로였다.

그룹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와 함춘호는 여전히 시인과 촌장으로 남아있었다. 12년만에 다시 만난 무대지만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런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80년대 당시 20대였던 시인과 촌장,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노래를 따라부르던 팬들이 30~40대 중년의 나이로 해후했을 뿐이다.

지난 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시인과 촌장" 음악회.11일까지 세 차례 공연을 남겨둔 시인과 촌장은 변함없는 팬들의 박수소리에 다시금 자신감을 되찾았다. 리더인 하덕규는 "연습일정이 빡빡해 좀더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면서 가졌던 두려움은 어느 정도 가셨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공연은 모두 3부로 꾸며졌다.

1부는 "때""얼음무지개""푸른 애벌레의 꿈"등 예전 히트곡으로 연다. 2부는 하덕규가 전문 가스펠 가수로 나선 이후 선보인 "문""돌아가야 할 때""쉼"과 다시 떠오른 히트곡 "가시나무"로 장식한다.

하덕규는 "가수 조성모가 "가시나무"를 리메이크하는 바람에 나도 1백만장 판매를 기록한 가수가 됐다"고 농을 늘어놓기도 했다.

1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맑고 감미로운 하덕규의 보컬과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란 자랑이 아깝지 않은 함춘호의 호흡은 여전하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백아와 그 소리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한 종자기가 무대에 선 듯 했다.

하덕규는 함춘호와 재결합에 대해 "함춘호의 기타가 나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지난 98년 함춘호와 함께 리유니언( Reunion ) 콘서트를 가진 이후 새 음반을 녹음하기로 하고 2년간 준비해온 것이다.

하덕규는 지금 새로운 음악인생을 여는 문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가스펠송을 만들면서 인간적으로,신앙적으로 많이 성숙했지만 정작 그런 체험이 녹아든 음악을 만들지는 못했다"고 겸손해했다.

"가스펠의 울타리속에 안주하기보다 내 얘기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기독교 교리를 변증하겠다는 다짐이다.

3부 순서는 새음반 "다리( The bridge )"에 들어있는 "뿌리""가시나무2"" Time in a bottle "로 이어진다.

모던록의 세례를 이제야 받아들이는 듯한 비트와 얼터너티브의 생명성도 느껴지는 곡들이다.

시대와 음악의 변화에 20~30년의 간극을 두고 멀찌감치에서 관조하는 듯한 모습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하덕규는 "동시대성은 동시대인들의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에서 찾아야지 음악형식이나 유행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신곡들은 주로 존재의 근원에 대한 현대인들의 생각에 물음을 던지고 절대적 진리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가시나무2"의 가사는 이런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고통은 또다른 사랑이냐고/내안에 아픔들이 물었지/./슬픔은 또다른 축복이냐고/지나는 바람에게 물었지만/네안에 대답있다/대답있다고 말하네." 하덕규는 "조성모의 "가시나무"에 열광하는 젊은 음악팬들이 세월이 흐르면 "가시나무2"의 가사에 동감할 것"이라며 신세대에 대한 믿음도 내비친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에는 관객들에게 "미안"이란 단어를 연발하기도 했다.

관람료가 저렴한 공연을 많이 마련하고 싶은데 재결합무대라는 의의 때문에 "고액"의 티켓요금이 책정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덕규는 "앞으로 소록도나 탄광촌처럼 소외받은 사람들이나 대학 캠퍼스같은 곳을 찾아 정말 편하고 허물없는 관객과의 만남을 갖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장규호 기자 seinit@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