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마니아] 배한성 <성우>..티코 몰고 2만km '유라시아 대장정'

성우 배한성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는 청소년 시절에 심취했다.

초라하고 가난한 생활과 불확실한 미래에 시달리던 나에게 영화는 현실 도피처이자 다다르고 싶은 환상의 세계였다. 유럽의 장식 예술품 같은 도시의 아름다움과 자연 풍광,그리고 미국의 거대함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울러 빼놓을 수 없는 호기심 덩어리는 바로 자동차였다.

1950~60년대 미국 자동차는 절정의 사치로 치장됐다. 프런트 그릴은 유럽 명문가 문장처럼 위풍당당하면서도 화려했다.

자동차의 꽁무니는 남극의 신사 펭귄을 연상시키는 연미복과 비행기 날개를 접목시켜 지상 비행의 스타일을 추구했다.

반면 유럽의 자동차들은 장남감처럼 작고 귀엽고 앙증맞으면서도 고풍스러운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낡고 털털거리는 "도라쿠"(트럭의 일본식 발음)와 버스 택시라고 해봐야 드럼통을 두드려 만든 시발택시가 고작이었던 당시니까 내겐 외국차가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개선문은 소유 불가능하지만 알랭 들롱이 타고 다니는 시트로앵은 나도 소유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내가 오너 드라이버가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70년대 초반이었다.

"피아트124"라는 중고차로부터 화려한 카라이프가 펼쳐졌다.

자동차에 대한 사랑이 괴상하고 유별나다는 입소문 때문에 자동차 시승기를 10여년 쓰다보니 자동차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도 주어졌다.

그런 것이 교통방송 MC로도 연결돼서 어설픈 교통 전문가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해외 모터쇼와 드라이빙 행사에 초대받아 여러나라의 자동차 문화와 교통환경에 대해 견학하는 기회도 갖게 됐다.

1992년에는 티코와 다마스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에 도전했다.

영국에서 출발해 국내 최초로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을 거쳐 러시아까지 들어갔다.

눈과 추위,배고픔을 겪으면서 시베리아를 거쳐 몽골과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까지 2만km에 달하는 대장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느새 자동차는 내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새 천년엔 어떤 자동차가 나와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즐거운 기대감에 들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