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어느 중소기업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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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벤처기업 넥스타커뮤니케이션의 황선진(32)사장은 최근 가슴아픈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초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난 이레스포츠 이정기(38)사장의 별세를 알리는 전화였다. 사망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했다.
이 사장은 최근까지 자금문제로 고민해왔다.
1년이상 매달려온 신제품 "체인 없는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자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87년 대학을 졸업한 이 사장은 중소기업을 경영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경기도 화성군에 자리를 잡고 대기업을 상대로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기름때로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고 한눈팔지 않고 일한 결과 95년엔 직원수 60여명의 그런대로 잘 나가는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최대 거래업체였던 모 기업이 부도 나면서 이 사장의 회사도 "적색거래처"로 분류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를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감을 받아서 어렵게 공장을 돌렸다.
그러던 중 지난 98년 이 사장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대만에서 들여온 체인없는 자전거의 시제품을 접하게 된 것.
조잡한 수준으로 제작된 이 제품에 10여년간의 현장 경험을 접목시키면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기술연구원 박사 2명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지난해말 어렵사리 생산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시제품을 검토한 일본 무역업체와는 구두계약까지 맺었다.
문제는 양산을 위한 자금이었다.
은행과 대기업 벤처투자팀, 창업투자회사 등을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기술력과 상품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투자대상이 아니다"라고 투자를 꺼렸다.
어떤 곳에선 "너희는 홈페이지도 없지 않느냐, 제조업은 열외다"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황 사장은 이 사장의 동생인 이레스포츠 이동기(35)이사와 함께 고인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투자자를 찾기로 했다.
비록 자신은 투자자들에게 인기있는 "인터넷 벤처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제조업이야말로 한국경제의 든든한 뿌리라는 신념 때문이다.
벤처와 코스닥의 열풍은 투자자금을 넘쳐나게 만들고 있다. 이 풍성한 "벤처투자의 만찬"에 초대받지 못한 전통 중소기업은 없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때다.
장경영 벤처중기부 기자 longrun@ked.co.kr
올해초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난 이레스포츠 이정기(38)사장의 별세를 알리는 전화였다. 사망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했다.
이 사장은 최근까지 자금문제로 고민해왔다.
1년이상 매달려온 신제품 "체인 없는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자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87년 대학을 졸업한 이 사장은 중소기업을 경영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경기도 화성군에 자리를 잡고 대기업을 상대로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기름때로 범벅이 된 작업복을 입고 한눈팔지 않고 일한 결과 95년엔 직원수 60여명의 그런대로 잘 나가는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최대 거래업체였던 모 기업이 부도 나면서 이 사장의 회사도 "적색거래처"로 분류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를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감을 받아서 어렵게 공장을 돌렸다.
그러던 중 지난 98년 이 사장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대만에서 들여온 체인없는 자전거의 시제품을 접하게 된 것.
조잡한 수준으로 제작된 이 제품에 10여년간의 현장 경험을 접목시키면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기술연구원 박사 2명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지난해말 어렵사리 생산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시제품을 검토한 일본 무역업체와는 구두계약까지 맺었다.
문제는 양산을 위한 자금이었다.
은행과 대기업 벤처투자팀, 창업투자회사 등을 발이 닳도록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기술력과 상품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투자대상이 아니다"라고 투자를 꺼렸다.
어떤 곳에선 "너희는 홈페이지도 없지 않느냐, 제조업은 열외다"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황 사장은 이 사장의 동생인 이레스포츠 이동기(35)이사와 함께 고인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투자자를 찾기로 했다.
비록 자신은 투자자들에게 인기있는 "인터넷 벤처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제조업이야말로 한국경제의 든든한 뿌리라는 신념 때문이다.
벤처와 코스닥의 열풍은 투자자금을 넘쳐나게 만들고 있다. 이 풍성한 "벤처투자의 만찬"에 초대받지 못한 전통 중소기업은 없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때다.
장경영 벤처중기부 기자 longrun@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