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50년만에 정권교체'] '천수이볜 누구인가'

대만 총통선거에서 대만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한 천수이볜(진수편,49) 당선자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40대의 젊은 나이에 총통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50년 9월 대만중부 타이난현에서 출생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였다. 아버지 천쑹건은 술꾼이었지만 빚을 내면서 아들의 교육비를 댔다.

국립 대만대학 상과에 입학한 69년 당시 타이베이 시의원 황신제의 국민당 공격연설에 감동, 전공을 법과로 바꾸었다.

3학년때 재학중 법률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4학년 때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79년 언론자유 수호운동을 계기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그는 81년 타이베이 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85년 펑라이다오라는 반체제 잡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때 부인 우수전(49)은 반대파의 테러로 보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천 후보는 그러나 출소 후 다시 활동을 활발히 전개, 89년과 92년 연속으로 입법의원 선거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94년 12월 국민당의 반세기에 걸친 권력독점 체제를 깨고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돼 일약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9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1세기의 젊은 지도자 100명"에 포함됐다.

천 당선자는 타이베이 시장 재직시 95년 고 장제스(장개석) 총통의 저택 택지 일부가 시유지인 점을 들어 이를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등 원칙론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퇴폐 이발소와 매춘 등 ''8대 업소(팔대행업)''를 일소하는 등 초강경 정책으로 업소 관계자들의 미움을 사 결국 98년 시장 재선에 실패하기도 했다.

95년 경남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타이베이 시장 시절부터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김재창 기자 charm@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