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코리아 2000] 제4부 : (6) '유럽과학의 요람-테크노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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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니스.
여기서 8번 고속도로를 타고 칸 방향으로 차를 달리면 이채로운 풍경이 드러난다. 한편에는 코발트 블루빛 지중해 물결이 넘실대고 다른 한편에는 멀리 알프스의 만년설이 은빛 광채를 내뿜고 있다.
그렇게 달리기를 20분 정도.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숲 사이에 갈래갈래 나 있는 언덕길들.
그 위에 저마다 모양새가 다른 건물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첨단의 냄새는 별로 풍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숲속 도시가 바로 유럽 과학단지의 원조이자 프랑스 테크노폴의 시조인 소피아 앙티폴리스다.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와 옛도시 명칭인 "앙티폴리스"를 합친 이름이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지난 1969년 프랑스정부 주도로 설립된 이후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유럽 최고 테크노폴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곳처럼 과학공원이란 말이 어울리는 곳도 드물지요. 나무와 풀이 대부분이라 공원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최고 수준의 첨단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니까요"
단지 관리를 맡고 있는 합작회사 SAEM의 제라르 파세라 이사가 은근히 자랑한다.
나무와 풀 일색이라는 그의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이 곳은 녹지가 잘 보존돼 있다.
전체 부지 2천3백ha(7백만평) 가운데 개발에 할당된 면적은 3분의 1.
나머지는 전부 "녹색"을 유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큰 제조업체는 들이지 않는다.
거의 연구개발(R&D) 중심이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를 개발하기 전부터 지역주민들이 내건 필수조건이었다.
그후 수십년동안 줄곧 황금률로 지켜져온 것이다.
이제 업체들이 꽉 들어차 포화상태에 가까운데도 결코 녹지를 침범하지는 않는다.
대신 주변 지역의 다른 단지들과 시설을 연결해 부지를 확장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 들어선 업체 수는 1천1백64개.
인력은 2만5백명을 넘어섰다.
전체의 43%가 IT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휴렛팩커드 오라클 노텔 등 쟁쟁한 대기업 연구소부터 중소 벤처까지 다양하다.
국적도 여럿이다.
전세계 68개국에서 온 첨단 두뇌들이 이곳에 몰려 있다.
단지 내엔 외국자본으로 설립된 업체도 1백개가 넘으며 이곳 인력의 25%를 고용하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여기로 몰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인프라를 꼽을 수 있다.
임대료가 싼데다 통신망 등 부대시설이 최고 수준이다.
곧 ADSL방식 고속통신망도 단지 전역에 깔릴 예정이다.
인근에 공항 항만 등 교통수단이 잘 구비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상적인 주변환경은 저절로 이뤄졌을까.
파세라 이사는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지금의 소피아를 만들기 위한 중앙과 지방정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습니다. 사실 니스는 관광산업 위주로 발달했던 곳이어서 통신망 같은 개념은 있지도 않았지요"
공항도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작았던 니스공항을 프랑스 제2의 국제공항으로 확장한 것은 바로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위한 것이었다.
파세라 이사는 비록 품이 많이 들긴 했어도 이처럼 축복받은 땅에 과학단지를 짓는다는 생각 자체는 기발했다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지리적 위치나 기후 등을 따지자면 소피아처럼 괜찮은 곳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명문 에콜 데 민(파리광산학교) 교수였던 피에르 라피트 박사가 1960년대 후반 처음 냈다.
이것이 르몽드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당시 지방의 과학교육을 강화하고자 했던 샤를 드골 대통령의 생각과 맞아떨어져 소피아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됐다.
일단 단지는 설립했지만 인프라를 갖추느라 정작 기업이 입주한 것은 1972년이 되어서다.
프랑랩이란 석유관련 연구소가 처음으로 물꼬를 트면서 기업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본격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
토대가 튼튼한 덕에 지난 1994~97년 닥친 불황으로 다른 테크노폴들이 한산했을 때조차도 이곳은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최근엔 인터넷업체들이 몰려드는 추세.
지난해 생긴 IT 관련 일자리만 1천개 이상이다.
소피아의 성공비결은 IT 분야의 다양한 기업과 연구소들을 한데 모아 R&D에 주력,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데 있다.
물론 풍부한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국립통신연구센터(CNET) 같은 각종 연구소와 국립고등정보과학대학(ESSI).유레콤 등 전문교육기관이 모두 합쳐 65개.
이 곳에서 매년 배출되는 수천명의 "두뇌"들은 소피아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소피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홍보가 된다"는 명성을 거머쥔 소피아 앙티폴리스. 개발과 보존에 똑같은 무게를 둘 줄 아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이 이룩한 걸작품이다.
니스(프랑스)=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
여기서 8번 고속도로를 타고 칸 방향으로 차를 달리면 이채로운 풍경이 드러난다. 한편에는 코발트 블루빛 지중해 물결이 넘실대고 다른 한편에는 멀리 알프스의 만년설이 은빛 광채를 내뿜고 있다.
그렇게 달리기를 20분 정도.
울창한 숲속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숲 사이에 갈래갈래 나 있는 언덕길들.
그 위에 저마다 모양새가 다른 건물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첨단의 냄새는 별로 풍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숲속 도시가 바로 유럽 과학단지의 원조이자 프랑스 테크노폴의 시조인 소피아 앙티폴리스다.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와 옛도시 명칭인 "앙티폴리스"를 합친 이름이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지난 1969년 프랑스정부 주도로 설립된 이후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유럽 최고 테크노폴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곳처럼 과학공원이란 말이 어울리는 곳도 드물지요. 나무와 풀이 대부분이라 공원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최고 수준의 첨단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니까요"
단지 관리를 맡고 있는 합작회사 SAEM의 제라르 파세라 이사가 은근히 자랑한다.
나무와 풀 일색이라는 그의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이 곳은 녹지가 잘 보존돼 있다.
전체 부지 2천3백ha(7백만평) 가운데 개발에 할당된 면적은 3분의 1.
나머지는 전부 "녹색"을 유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큰 제조업체는 들이지 않는다.
거의 연구개발(R&D) 중심이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를 개발하기 전부터 지역주민들이 내건 필수조건이었다.
그후 수십년동안 줄곧 황금률로 지켜져온 것이다.
이제 업체들이 꽉 들어차 포화상태에 가까운데도 결코 녹지를 침범하지는 않는다.
대신 주변 지역의 다른 단지들과 시설을 연결해 부지를 확장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 들어선 업체 수는 1천1백64개.
인력은 2만5백명을 넘어섰다.
전체의 43%가 IT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휴렛팩커드 오라클 노텔 등 쟁쟁한 대기업 연구소부터 중소 벤처까지 다양하다.
국적도 여럿이다.
전세계 68개국에서 온 첨단 두뇌들이 이곳에 몰려 있다.
단지 내엔 외국자본으로 설립된 업체도 1백개가 넘으며 이곳 인력의 25%를 고용하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여기로 몰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인프라를 꼽을 수 있다.
임대료가 싼데다 통신망 등 부대시설이 최고 수준이다.
곧 ADSL방식 고속통신망도 단지 전역에 깔릴 예정이다.
인근에 공항 항만 등 교통수단이 잘 구비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상적인 주변환경은 저절로 이뤄졌을까.
파세라 이사는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지금의 소피아를 만들기 위한 중앙과 지방정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습니다. 사실 니스는 관광산업 위주로 발달했던 곳이어서 통신망 같은 개념은 있지도 않았지요"
공항도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작았던 니스공항을 프랑스 제2의 국제공항으로 확장한 것은 바로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위한 것이었다.
파세라 이사는 비록 품이 많이 들긴 했어도 이처럼 축복받은 땅에 과학단지를 짓는다는 생각 자체는 기발했다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지리적 위치나 기후 등을 따지자면 소피아처럼 괜찮은 곳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명문 에콜 데 민(파리광산학교) 교수였던 피에르 라피트 박사가 1960년대 후반 처음 냈다.
이것이 르몽드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당시 지방의 과학교육을 강화하고자 했던 샤를 드골 대통령의 생각과 맞아떨어져 소피아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됐다.
일단 단지는 설립했지만 인프라를 갖추느라 정작 기업이 입주한 것은 1972년이 되어서다.
프랑랩이란 석유관련 연구소가 처음으로 물꼬를 트면서 기업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본격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
토대가 튼튼한 덕에 지난 1994~97년 닥친 불황으로 다른 테크노폴들이 한산했을 때조차도 이곳은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최근엔 인터넷업체들이 몰려드는 추세.
지난해 생긴 IT 관련 일자리만 1천개 이상이다.
소피아의 성공비결은 IT 분야의 다양한 기업과 연구소들을 한데 모아 R&D에 주력,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데 있다.
물론 풍부한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국립통신연구센터(CNET) 같은 각종 연구소와 국립고등정보과학대학(ESSI).유레콤 등 전문교육기관이 모두 합쳐 65개.
이 곳에서 매년 배출되는 수천명의 "두뇌"들은 소피아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소피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홍보가 된다"는 명성을 거머쥔 소피아 앙티폴리스. 개발과 보존에 똑같은 무게를 둘 줄 아는 프랑스인들의 정신이 이룩한 걸작품이다.
니스(프랑스)=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