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화 교수의 'Case Study'] 舊경제 벡텔 '이유있는 호황'

1898년 워렌 벡텔(Warren Bechtel)이 창립한 벡텔 그룹은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굴지의 건설회사다.

오클라호마주의 건설 붐 시절에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서부로 가는 철도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근거지를 옮겼으며 그후 세계 각지에서 철도.정유공장.공항.발전소 등을 건설하며 착실하게 외형을 키워왔다.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만들어진 유명한 후버댐(Hoover Dam)도 이 회사가 건설한 것이다.

1990년 설립자의 증손자인 라일리 벡텔(Riley Bechtel)이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4세 경영시대에 접어든 이 회사는 걸프전으로 황폐하게 된 쿠웨이트의 재건사업을 주도했고 95년에는 미국회사로서는 최초로 중국에서 건설면허를 얻었으며 98년에는 1백26억달러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미국 최대의 건설회사가 되었다.

벡텔은 특히 지난 10년 동안 홍콩의 신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재미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1997년 이 지역에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이 회사는 미국 및 유럽에 영업의 중점을 두게 됐다.

미국에서는 텔레커뮤니케이션 관련 기반시설을 깔고 고속도로와 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그동안 이 회사가 주로 맡은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벡텔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기업들은 다름 아닌 인터넷 회사들이다. 그 까닭은 창고나 유통센터를 지어야 하는 온라인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건설수요가 급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벡텔은 바로 그런 회사들이 꼭 필요로 하는 두 가지 강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사를 빨리 할 수 있는 능력과 동시에 여러 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힘이다.

인터넷사업에서는 속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공요인이므로 온라인회사들로서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빨리 수행할 수 있는 벡텔이 무척 매력적인 회사인 것이다. 현재 벡텔은 세계 60개국에서 약 1천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 분야에서 벡텔이 확보한 첫 주요고객은 인터넷 슈퍼마켓이라고 할 수 있는 웹밴(Webvan)이다.

기존의 슈퍼마켓에 물건을 공급하는 창고는 통상 똑같은 품목을 많이 담고 있는 큰 깔판(pallet)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인터넷 식료품점의 창고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개별 품목을 꺼내기 쉽도록 설계돼야 한다.

1999년6월 웹밴은 2년동안 이러한 유통센터 26개를 건설하는 10억달러짜리 대형공사를 벡텔에 발주했다.

각 창고의 크기는 약 33만평방피트이며 만일 계약기간 내에 공사가 끝나면 벡텔은 웹밴의 주식 1백80만주를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이어서 지난 11월 벡텔은 웹호스팅회사 에퀴닉스(Equinix)로부터 4년동안 전세계에 30개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12억달러짜리 공사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에퀴닉스는 서버나 라우터 그리고 기타 다른 인터넷관련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고도의 보안장치가 되어 있는 창고를 세계 각지에 건설하고자 하는데 이 회사도 역시 벡텔의 공사추진속도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이 경우에도 벡텔이 모든 프로젝트를 제때에 마치면 이 회사는 에퀴닉스의 주식 23만5천주를 주당 1.5달러에 인수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벡텔의 고객이 된 인터넷회사는 샌프란시스코의 아이모터스닷컴(iMotors.com)이다.

중고차를 수리해 새것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온라인으로 파는 이 회사는 약 30개의 수리공장을 짓고 싶어한다.

통상 그러한 수리공장을 하나 건설하는 데는 약 1년이 걸리지만 이 회사는 공사기간을 6개월로 줄이고자 했던 것이다.

지난해 9월 사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올 1월 2년에 걸쳐 12만평방피트의 수리공장 30개를 건설하는 3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벡텔에 발주했다.

앞의 두 회사와 비슷한 이유로 벡텔을 고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첨단을 달리는 인터넷회사들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는 대형건설회사를 앞다퉈 찾는 재미있는 현상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