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30) 제1부 : 1997년 가을 <3> '흔들리는 노욕'

글 : 홍상화

"여성의 미의식은 어떻게 변화했나요?" 토크쇼 사회자가 이정숙을 향해 물었다.

"중세기에는 여성의 목,어깨부분과 가슴부분,허리부분에 미의식이 집중되었지요"

이정숙이 마치 자신의 미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긴 목덜미와 어깨부분,가슴부분, 허리부분을 두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그런 그 당시의 미적 관점이 의상에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당연하지요.

여러분도 서양의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보아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 여성의 의상은 목과 어깨와 가슴을 내놓았지요. 허리는 잘록하게 보이려고 했고요"

"허리 밑부분은 페티코트를 입고 그 위에 풍성한 스커트를 입었지요?

"네,풍성한 스커트 모양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아직 다리의 각선미가 중시되지 않았던 시대니까요"

이정숙이 두 다리를 뻗어 보였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화면 속 이정숙의 행태를 지켜보던 황무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변화했습니까?"

"각선미가 중요한 미의식을 획득하게 됐지요.

그래서 미니스커트가 등장했어요.

여러분도 각선미를 자랑하고 싶으면 미니스커트에 웃옷은 풍성하고 평범하게 입는 것이 좋아요.

남성의 시선이 각선미 외에는 다른 곳으로 갈 여유를 주지 않거든요"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히프가 미적 관심을 얻게 되었지요"

이정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서 두 손을 허리에 얹어놓고 자신의 히프를 보여주었다.

저게...

저런 게 대학 교수라구...

황무석이 입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래서 바지가 등장했지요.

바지를 입을 때는 아까와 같은 이유로 각선미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히프부분은 찰싹 붙어야 되고 다리부분은 헐렁해야지요"

"최초로 여성의 바지를 유행시킨 사람이 입생 로랑이라죠?"

"맞아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입생 로랑은 아주 훌륭한 프랑스 디자이너예요.

그분의 노력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바지가 여성의 정장이 될 수 있었지요.

이제는 외국에서 대통령 취임식에 여성이 바지를 입고 가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의상 디자인의 혁신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에요.

가장 훌륭한 디자인 혁신은 단연 블루 진일 거예요.

남녀노소 상관없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잖아요"

"현재의 디자인 개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엘레 심프리시티나 젊은이들에게는 엘레 스포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즉,단조로운 우아함,스포틱한 우아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사회자가 야릇한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무슨 질문이든지 해보세요.

너무 개인적이면 대답을 안하면 되니까요" 이정숙이 발정난 개가 꼬리를 치듯 흰 치아를 맘껏 내보이며 웃었다.

황무석이 깊은 신음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