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실리콘 앨리에서 온 편지

얼마전 실리콘 앨리의 친구로부터 한통의 E메일이 왔다.

벤처 캐피털 비즈니스로 번 돈의 일부를 이웃돕기에 쓰고 싶으니 괜찮은 곳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명문 와튼 경영대학원을 나와 페인웨버,프루덴셜 등 월가의 증권회사에서 15년동안 커리어를 쌓은 뒤,인터넷 벤처 캐피털 사업에 뛰어들어 기반을 잡은 전형적인 실리콘 앨리의 베테랑이다.

인터넷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해 경영하고 있는 그는 "정확한 액수는 비밀이지만" 인터넷 붐 덕분에 상당한 부를 챙겼노라고 밝혔다.

작년엔 한국의 유망한 e비즈니스 벤처기업에 투자해 적지않은 지분을 확보했다고도 했다. 이 회사가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어 또 한번의 "대박"이 기다리고 있단다.

30대 중반의 한국계2세인 그는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만 살아온 "토박이 뉴저지 보이"다.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못한다. 그런 그가 한국의 벤처기업에 투자한 지분의 절반을 "조국의 사람들"에게 내놓고 싶다고 했다.

그중 반은 한국에 살고있는 친척들에게 나눠주고,나머지는 괜찮은 자선단체에 기탁하고 싶으니 소개해달라는 얘기였다.

미국내 비즈니스를 통해 번 돈은 이미 25%씩을 꼬박꼬박 떼어 미국의 자선단체들에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굳이 나에게 한국내 자선단체의 추천을 부탁하는 이유가 "규모가 큰 몇몇 사회사업단체들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미국의 경우로 봐서 그런 단체들은 대부분이 위선과 형식주의에 얽매여 있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찬찬히 써내려 간 그의 E메일 중에서 나의 눈을 가장 오랫동안 붙들어맨 대목이 있었다.

"요즘 미국의 인터넷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수익금의 자선단체 기부 등 사회 환원이 유행이며,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의 설명은 지난 몇년새 미국내 자선재단의 숫자가 배이상 늘어났다는 통계로 이어졌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경우 지난 3년간 사회사업재단의 자산이 매년 25~40%씩 늘었다고 한다.

많은 벤처 사업가들이 자신들의 횡재를 "건강한 부"로 가꾸길 원하며,그 일환으로 사회 환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괜찮은 한국의 자선단체"를 소개해달라고 E메일을 보내왔지만,이 글이 국내 벤처 사업가들에게도 널리 공유되길 바란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