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사 독립경영 가속..그룹단위 공채/社報제작 옛말

삼성은 최근 외환위기 직후 발행을 중단한 그룹 사보를 "삼성월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간할 계획이었다.

삼성의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한 매체가 필요하다는 내부여론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2개월동안 계열사별로 그룹 사보 발간을 위한 소재를 찾는 등 준비를 해왔다.

삼성은 그러나 최종 발간을 앞두고 이를 전격 취소했다.

"독립경영"의 취지에 맞지 않고 자칫 그룹 경영으로 되돌아가는게 아니냐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올해 광고 에이전트로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이 아닌 피닉스컴으로 선정했다.

광고대행사 입장에서 보면 삼성증권은 연간 광고비가 2백억원을 훨씬 웃도는 큰 고객이다.

삼성증권측은 지난해 제일기획을 포함한 3개 광고대행사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피닉스컴을 에이전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냉장고 광고를 광고대행사 웰컴에 맡기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올들어 삼성 계열사의 해외 프로젝트 참여여부 결정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관계사의 비즈니스라고 해도 수익에 비해 리스크(risk)가 크면 협력하지 않겠다는게 삼성물산의 기본 방침이다. 그룹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가 남이가''식의 계열사간 유대가 갈수록 약해지고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통할조직의 파워도 예전같지가 않다.

이렇게 된데는 계열사별로 영업실적과 주가 등에 따라 연봉이 서너배씩 차이가 나는 등 실적평가에 따른 보상시스템의 확산이 주된 요인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진단한다.

이때문에 공동개발 신상품인 경우 서로 발표회를 독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LG의 경우 계열사별 이사회를 활성화해 독립경영체제를 갖췄다.

각사별 이사회에서 사업전략과 투자를 결정하면 계열사별 의존이 불가능하다는 구본무 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른 것이다.

LG 계열사가 한달에 2차례정도로 이사회를 자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 회장 스스로도 대표이사로 등재된 화학과 전자의 이사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LG관계자는 "e비즈니스가 계열사별로 추진되다 보니 중복되는 사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중재한 툴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는 그룹공채를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계열사들 편의를 위해 일부 그룹 공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독립경영을 정착시킨다는 차원에서 이를 폐지키로 한 것이다.

또 계열사 인력간 전배도 최근 없앴다.

SK는 연초에 필요 인력을 외부에서 아웃소싱하거나 육성토록 하고 계열사간 전배를 중단시켰다고 설명했다.

독립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011 무선단말기 가입자 유치 켐페인도 없앴다.

현대는 계열사간 거래단가를 산정할 때 서로 편의를 봐주지 않기로 했다.

원자재 구매 등을 완전 경쟁입찰을 통해 할 수 없다고 해도 계열사에 특혜를 주는 식의 거래를 없애겠다는게 정몽헌 회장의 뜻이라고 회사측은 전했다.

이에 따라 현대 삼성 LG SK 등 그룹사의 계열사 의존도가 앞으로 계속 낮아질 전망이다.

인사 채용 보수 측면에서도 그룹 계열사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추세다.

삼성은 계열사간 연봉제를 도입한데 이어 올들어 사업부별로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제도(Profit Sharing)를 도입키로 함에 따라 임금가이드라인은 완전 없어지게 됐다.

현대전자와 현대정보기술 등 일부 계열사가 연봉제를 도입한 현대도 차별급여제도를 확산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대 삼성 등 주요그룹은 임원 인사에 대한 모든 권한을 계열사 대표이사에 주기로 했다.

예전 같은 그룹 차원의 임원 인사를 없애겠다는 의지다.

기획 재무 생산 인사 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그룹 계열사들은 무늬만 그룹 색깔만 띨 뿐 실제 기업내용은 완전 별개로 바뀌고 있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주요 그룹들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실질적인 계열사별 독립경영을 갖췄다"며 "관계사간 연결고리가 갈수록 느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