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산자/외교부의 점심효과?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산업자원부와 외교통상부 간부들이 점심을 함께 했다.

오영교 산자부차관과 반기문 외교부차관이 대표격으로 참석했다. 산자부가 맡고 있던 통상관련 업무가 외교부로 넘어간 뒤 두 부처의 간부들이 사석에서 만난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이날 점심엔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산자부와 외교부는 최근 유럽연합(EU)과의 조선분야 통상마찰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고 상당한 신경전(?)을 벌였다. 당초 EU와의 조선협상은 외교부가 시작했으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외교부는 산자부가 직접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3월초 산자부 차관보가 참석한 고위급 협상도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협상 주도권이 다시 외교부로 넘어갔다. 중요한 협상 과정에 장수를 바꾸는 핑퐁이 이어진 것이다.

조선협상은 우여곡절 끝에 4월초 타결됐지만 마지막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이 흘러나왔다.

외교부쪽에서 한.EU 대표가 합의서에 가서명을 하기도 전에 합의 사실을 흘려 협상 타결의 공을 독차지하려 했다는 게 산자부의 불만이었다. 외교부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받아쳤다.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분야 협상 등과 관련해서도 농림부와 외교부간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각 분야 통상협상은 해당분야에 대한 폭넓은 전문지식이 없이는 수행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지금처럼 협상에 나서는 부처와 해당분야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부처가 따로 놀아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외협상창구가 외교부로 일원화됐지만 이는 협상권에 불과해 외교부도 책임지고 모든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통상관련 정부 조직을 그대로 두어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 98년 3월 조직개편 당시 통상조직이라는 하드웨어가 다소 불만족스럽게 만들어졌더라도 부처간 원활한 협조등 소프트웨어적인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었지만 역시 소프트웨어 개선은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17일 산자부와 외교부의 점심은 소프트웨어를 좀더 발전시키려는 노력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이다.

김수언 경제부 기자 sookim@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