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묻지마'와 다위니즘

세계 증시를 공황속으로 몰아넣었던 미국 증시의 폭락 행진이 17일을 고비로 일단 "수습국면"에 접어든 느낌이다.

CNN 뉴스는 이날 매시간 커버 스토리로 "황소가 돌아왔다 (The Bull is Back!) "라는 타이틀하에 활기를 되찾은 미국 증권가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 증시를 강타한 "거품 빼기" 장세는 한가지 분명한 교훈을 일깨워줬다.

"주식 투자는 카지노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많은 투자자들에게 주식 투자가 일확천금의 횡재 수단으로 오인돼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인터넷 생명공학 등 몇몇 분야의 첨단주들은 "묻지마"의 맹목적인 투자 대상이었다.

입심좋은 증권 관계자들로부터 "모멘텀 투자"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를 선물받긴 했지만,검증되지 않은 주식에 뭉칫돈을 쏟아부은 투자자들의 행태를 "카지노"의 그것과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묻지마"에 편승했던 많은 투자자들은 지금 그 값을 치르고 있다. 한때 천정부지의 상승 행진을 했던 온라인 완구소매업체인 이토이즈 (eToys) 의 주가는 몇 달새 94%나 내려앉았다.

윈도 시스템을 대체할 컴퓨터 운영체계 업체로 화려하게 떠올랐던 VA 리눅스 시스템즈사의 주가도 91%나 하락한 상태다.

한바탕의 잔치가 끝나고 "설거지"가 시작된 지금,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테마"가 아닌 "옥석"을 가리는 것이라고 월가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프로 투자자들 사이에 "될성 부른" 상장 기업만을 가려 투자를 집중하는 "다위니즘"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초반 미 증시에 PC 붐이 한창 일었을 때도 양상은 비슷했다.

이글 컴퓨터,노드스타 컴퓨터,케이프로,워드 스타,벡터 그래픽스 등 수많은 PC 업체들이 한때 투자자들을 사로잡았지만 "다위니즘"의 검증 과정을 헤치고 살아남은 기업은 델,선 마이크로 시스템즈,시스코,오라클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실체가 없이 허울과 테마 만에 편승한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지난 증시의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입증돼 왔고,이번 한달여간의 "거품 빼기"를 통해서도 새삼 반추되고 있다. "카지노 투자"의 종말이 가져다 주는 아픈 교훈이 미국 증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