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 '화왕산'] 수줍은 진달래 불바다..봄마다 '연분홍빛' 단장

진달래산천.

마을 뒷산에서부터 지리산과 설악산까지 옥토를 마다하고 박토에 진달래가 꽃을 피웠다. 우아한 귀부인이라기보다는 수줍은 새색시 볼 같은 연분홍꽃.

경남 창녕군 화왕산(7백57m) 자락에도 불바다를 이뤘다.

가을 억새로 이름높은 산이지만 봄이면 이렇게 "진달래옷"으로 치장한다. 산중턱은 진달래가 환장할 정도로 많다해서 "환장고개"로 불린다.

진달래는 우리네 역사처럼 비감과 애절함의 표상이었다.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꽃 펴 있고/.../당신은 피흘리고 있었어요"(신동엽의 진달래산천),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의 진달래꽃). 21세기 화왕산 진달래는 그러나 김소월의 애달픔도, 신동엽의 비장감도 아닌 "봄의 축제"로 다가올 뿐이다.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 곳은 정상밑 화왕산성 주위 비탈과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일대.

수십 수백그루씩 억새와 이웃해 서식한다. 하지만 산 전체 어디서나 진달래를 만날 수 있다.

비슬산과 영취산의 진달래가 한 두곳에 집중적으로 피는 것과 다르다.

화왕산 등산로는 크게 두가지.

화왕산 서쪽 창녕읍 창녕여중 입구에서 자하곡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와 동쪽 옥천계곡을 통해 산정에 이르는 코스가 그것.

2.7km의 창녕코스는 정상까지 불과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매우 가파르다.

특히 환장고개는 등산객의 숨을 헐떡거리게 할 정도로 비탈져 있다.

일반인들은 옥천계곡 코스로 오르는게 좋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약 6.5km.

널찍한 도로가 산허리를 돌며 정상까지 연결된다.

계곡미와 진달래를 완상하며 오르는 길이다.

산아래에는 벚꽃이 끝무렵에 접어들었다.

산위로 오를수록 진달래나무가 많아진다.

아침무렵 진달래 꽃잎에 맺힌 이슬은 영롱하다.

중턱쯤에는 미처 못다진 개나리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노란 개나리, 누런 억새, 분홍 진달래.

산은 눈부실 정도로 화사하다.

소나무숲을 통과할 때는 삼림욕을 하듯 상쾌하다.

저녁무렵 산등성이에서 굽어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산행중에는 요즘 인기상한가인 TV드라마 "허준"의 촬영장이 눈에 들어온다.

극중 허준이 나환자들을 돌봤던 너와집과 굴피집 세트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산정아래 화왕산성분지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다.

지난 2월 대보름날 억새를 태운 자리에서 억새의 파란 새순들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목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매년초 억새태우기 행사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 축제를 갖는다.

갖가지 내력을 지닌 문화재도 많다.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은 임진왜란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아 전공을 세운 곳이다.

산성내에는 용지란 3개의 연못이 있으며 창녕 조씨의 시조가 태어났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신라시대 8대 종찰의 하나였던 관룡사에는 4점의 보물과 다수의 지방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총산행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

아침 일찍 등산한 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점심식사를 하는 일정을 잡으면 이상적이다.

옥천에서 30분쯤 남쪽으로 가면 부곡온천에 닿는다.

국내 최고온도인 섭씨 78도의 유황온천으로 하루 6천t의 온천수가 용솟음친다. 온천주변에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화왕산=유재혁 기자 yooj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