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일자) 현실에 바탕 둔 지배구조개선을

법무부가 세계은행의 자금지원을 받아 마련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시안을 보면 기업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아무리 앞으로 보완될 시안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도외시한 채 선진국에서조차 검증이 안된 각종 제도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있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한국을 마치 기업지배구조 실험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먼저 집중투표제를 강제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고 기업경영 효율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철회돼야 마땅하다.

집중투표제는 기업경영권에 대한 매력을 감소시켜 기업가치를 하락시키고 이사간 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어 러시아 칠레 멕시코 등 극소수의 후진국에서만 채택이 강제화돼 있는 제도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선택사항으로 완화되는 추세에 있다.

선택사항으로 돼 있는 일본의 경우 상장기업중 채택한 기업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1주 대표소송제도 겉보기에는 소액주주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기업들이 송사 뒷감당을 하다가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면 과연 이것이 대다수 소액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지배구조를 사외이사 중심으로 몰고 가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사외이사는 어디까지나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개선시안에서는 집행이사 후보추천권은 물론이고 감사위원회 장악,이해관계자 거래승인권 등 경영전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책임성과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가 태부족한 현실에서 어떻게 사외이사에게 경영전권을 맡긴단 말인가.

또 소액주주 1명의 지명과 제청으로 이사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사후보 난립을 초래해 주총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수용여건이 안돼 있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사외이사제도 도입 과정에서 똑똑히 경험했다.

눈가림으로 억지로 도입한 사외이사제도가 "하는 일없이 돈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제시된 지배구조 개선시안은 실천 가능한 내용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 목표도 경영효율 제고를 통한 기업가치 극대화에 둬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옥상옥의 감시장치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이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관련시스템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소수지분으로 경영을 전횡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실체가 모호한 소액주주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사외이사에게 경영전권을 넘기는 것만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