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리콘밸리의 한국벤처] (4) '관료식 사고 버려야'

지난달 25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한국의 정보통신벤처지원센터(i-Park)가 문을 열었다.

정보통신부가 한국 벤처기업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돕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1백50억원을 투자해 세운 이 센터는 건평 1천4백여평으로 모두 80여개의 기업이 입주토록 돼 있다.

개소식에 맞춰 열린 i-Park입주업체들의 전시회엔 현지 벤처캐피털리스트 등 1천여명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세계 두번째로 광저장장치 RAID를 개발한 유니와이드테크놀로지(대표 정갑석)와 비메모리반도체(ASIC)설계업체인 아라리온(대표 정자춘) 레이저광전송기를 만드는 레이콤시스템(대표 박기수) 등은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대규모 벤처지원센터인 i-Park가 일단은 화려한 출발을 한 셈. 문제는 i-Park이 앞으로 한국 벤처기업의 실리콘밸리 전진기지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다.

선례로 보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통부는 이미 i-Park와 같은 벤처지원센터를 실리콘밸리에 갖고 있다. 지난 98년 4월 설립한 한국소프트웨어인큐베이터(KSI).새너제이시 샌타클래라 가에 있는 KSI엔 현재 3R소프트(대표 유병선) 라스21(대표 박광용)등 12개 벤처기업이 들어 있다.

그러나 KSI는 실리콘밸리에서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여기를 거쳐간 16개 업체중 미국 벤처캐피털로부터 제대로 투자받은 회사는 한곳도 없다. MP3플레이어를 개발한 디지털캐스트(대표 황정하)가 현지의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와 M&A(인수합병)에 성공한 게 고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 스스로 실리콘밸리식이 아닌 한국식 지원을 했기 때문.

"실리콘밸리에서 인큐베이팅 센터는 시설만 제공하는 것으론 의미가 없다. 사람이 중요하다. 미국에 첫 발을 내딛는 벤처기업이 사업계획서를 쓰는 것에서부터 투자유치를 할 때까지 사람이 직접 나서 도와주는 게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현지에 네트워크를 가진 마당발 매니저를 고용해야 한다. 미국의 인큐베이팅 센터는 모두 그렇게 한다. 한데 KSI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갖추지 못했다. 그저 하드웨어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은 꼴이다"(윤승용 KTB네트워크 미주지사장)

그나마 있는 사람조차 한국식으로 운영됐다.

KSI의 직원은 소장을 포함해 모두 7명.이들 업무의 절반은 한국에서 온 "귀빈접대"였다.

지난 3월말까지 KSI를 운영했던 박승진 전 소장의 실토.

"KSI소장으로 있는 지난 2년동안 새너제이 공항을 1백번도 더 나갔다.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한국의 정치인 관료들을 맞기 위해서다.
업무의 60%이상을 한국 손님접대로 허송하는 데 도대체 입주기업을 위해 뭘 할 수 있겠나"

박 전소장은 컨설팅 다운 컨설팅을 하기 위해 지금은 얼리엑싯닷컴(earlyexit.com)이란 회사를 실리콘밸리에서 차려 운영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건수 올리기에 정신이 없다.

기왕에 KSI가 있는데도 i-Park를 만든 것이 그렇다.

이름 말고는 다를 게 거의 없는 벤처지원센터를 두개나 갖고 있다.

그것도 같은 부처가.

현재 i-Park엔 한국 벤처기업이 절반정도 밖에 차지 않아 KSI를 i-Park로 이사시키는 걸 검토중이다.

예산낭비란 지적을 받을 만하다.

물론 정부가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국제화에 익숙치 않은 벤처기업에 정부 지원은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한국 방식,특히 관료적 사고방식으론 아무리 지원을 해도 안 통한다는 게 그간의 경험이다. 실리콘밸리는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너제이(미국 실리콘밸리)=차병석 기자 chabs@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