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華橋재벌에 서구식경영 바람

[ The Economist 본사독점전재 ]

아시아비즈니스계를 장악하고 있는 화교 타이쿤(재벌)들은 아직도 기업 지배구조 확립이나 투명성 강화 같은 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 통신업체 인수등으로 영향력이 더욱 커진 홍콩의 리카싱 가문의 경우,유통에서 부동산 통신에 이르기까지 홍콩경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홍콩증시에서 거래되는 자금의 3분의1을 리카싱 가문이 통제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서양식 비즈니스관행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면서 타이쿤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변화의 요인으로는 다음 네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타이쿤들이 다음 세대에게 기업경영권을 물려줄 시기가 도래했으며,이들 2세들은 대체로 구미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 서양식 경영원칙에 충실하다.

둘째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주주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서구식 자본주의 원칙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셋째 인터넷산업의 폭발적 성장이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넷째 아시아의 법제 및 금융시스템이 정비되면서 타이쿤들의 불투명한 비즈니스 관행이 입지를 잃고 있다.

변화의 움직임은 리카싱 가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난한 중국이민자이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수학한 빅토르와 리처드 두 아들은 기업재정과 경제에 대해 서구식 개념으로 무장돼 있다.

대만 쿠 그룹의 제프리 쿠 2세는 명문 와튼경영대학원을 마쳤으며 홍콩 부동산 재벌그룹 선 홍 카이의 후계자 삼형제도 영국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물론 서구를 안다는 것과 서구에 동화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도서기"를 내세우며 아시아 기업계 변화가 현대식 기술과 유교적 문화의 결합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주주이익과 기업경영에 대한 아시아 기업들의 태도가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이 사실이며 이제는 서구 경영대학원의 이론들이 실제 아시아 시장에서도 적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2세들의 경영권 접수라는 상황만큼이나 강력한 변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기업들은 외부의 재정 및 경영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 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처럼 가족구성원만으로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은 충분치 않고 외부 전문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절박해졌다.

외국 주주들의 등장으로 아시아기업 문화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타이쿤들은 더욱 거센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게끔 만들었다.

예전에 화교 네트워크가 효과를 발휘한 것은 시장내에 믿을만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 발전으로 인한 정보의 공유와 자유로운 이동은 자연히 기존 네트워크의 힘을 약화시켰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시대를 맞아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장벽이 낮아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홍콩의 소매유통업계는 원래 웰컴체인과 리카싱 가문의 파크앤드숍이 양대산맥으로 시장을 독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투명한 구미 경영방식을 갖고 있는 온라인 유통업체 애드마트가 등장하면서 치열한 가격경쟁이 시작됐다.

이에따라 기존 사업의 온라인화가 현재 타이쿤들의 최대 과제로 부상했다.

대만 쿠 그룹의 경우,후계자인 제프리 쿠가 온라인뱅킹 그룹과 시멘트 및 화학부문의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사업을 맡고 있다.

기업투명성이 제고되고 족벌체제를 탈피한 전문적 기업경영과 주주들의 발언권 강화,소액주주들의 이익보호 원칙이 실현된다면 타이쿤들이 이끌어온 아시아 기업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5월5일자 ]

정리=고성연 기자 amazingk@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