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임시국회 무산 책임공방

남북정상회담과 투신사 공적자금투입등 산적한 국정현안을 다룰 것으로 예상됐던 15대 국회 마지막 임시국회가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12일 열린 총무회담에서 여야는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어렵다며 임시국회 대신 3개 상임위만 열기로 합의했다. 한나라당측도 더이상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하지 않기로해 15대 낙선의원들의 얼굴을 더이상 의사당에서 찾지 못할 듯하다.

총선을 전후해 국회는 거의 4개월 동안을 무위도식했음에도 협상에 임하는 여야 총무들의 모습은 뻔뻔하기 그지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낙선의원들의 대거 불참으로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없으리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댔다. 그러나 최근 열린 교육위에서는 낙선한 한나라당 함종한 위원장이 사회를 보면서 회의를 이끌었고 통외통위 간담회에서도 모든 의원들이 참석한 점에 비춰볼 때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임시국회를 열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저변에 있다.

여야 모두 내부행사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회가 열려 논란이 되길 원치않는데다 임시국회를 열 경우 5.18 기념식 행사와 금강산 관광등 줄줄이 잡힌 일정을 취소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총재와 부총재를 경선으로 뽑는 5.31 전당대회와 국회의장단 후보를 선출할 내달 2일 의원총회에 온 신경이 쏠려있다.

자민련은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해야 임시국회를 열수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이달 들어서만 30여명의 의원이 외유를 떠났거나 떠날 계획을 갖고 있다.

국정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아예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임시국회 불발의 책임을 상대방에 떠넘기는 모습은 점입가경이다.

민주당 박상천 총무는 "우리는 23일 서둘러 총무경선을 갖기로 하는등 국회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데 한나라당이 전당대회에 매달리느라 임시국회 협상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부영 총무는 "여당이 당내행사를 이유로 임시국회를 열지 못하겠다는데 야당으로서 더이상 어쩌란 말이냐"며 상임위라도 열기로 했으니 되지 않느냐고 변명했다.

16대 국회 원구성 협상은 후임총무가 맡아서 할일이라는 이유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16대 국회의 개원도 기약할 수 없다. 본분을 망각한 채 책임을 떠넘기는 여야 정치권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그나마 "진흙탕 싸움"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정태웅 정치부 기자 redael@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