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강 명물 '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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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아침 저녁식사 때 받은 수라상차림에는 몇 가지 기본원칙이 있었다.
밥과 탕,그리고 찜 전골 김치 장류등 기본 찬 외에도 따로 12가지나 되는 반찬이 올려졌다. 이른바 "12첩 반상"이라는 것인데,그 중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회다.
늘 육회나 명산지에서 진상한 어패류의 생회가 상에 올랐다.
특히 5월 단오를 앞둔 요즘 같은 절기에 별미로 꼽혀 수라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웅어회였다. "한강 하류 행주에서 나온다. 늦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궁중의 사옹원 관리들이 그물로 잡아 왕에게 먼저 진상한다. 그 뒤 생선장수들은 시가지를 돌면서 웅어를 사라고 외친다. 이 물고기는 횟감이다"
영조때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나오는 이런 기록은 웅어의 명산지가 예부터 행주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1755년 간행된 "고양군지"에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50여일 동안 사옹원에서 행주에 위어소를 차려놓고 웅어를 진상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웅어는 위어라고도 불리는 가늘고 긴 칼 모양의 물고기다.
바다에서 자란뒤 4~5월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다.
어미는 30cm나 되는 것도 있다. 웅어는 왕이 사는 곳을 그리워하는 물고기라는 전설도 전해온다.
70년대초까지만 해도 행주산성밑 한강변 마을에는 웅어횟집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 뒤 어획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해 요즘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웅어횟집은 장어구이집으로 모두 간판을 바꿔 달았다.
수질오염때문이라지만 행주나루 인근에 무성하던 갈대밭을 모두 없애버린 탓이라고도 한다.
"위"는 갈대를 뜻하는 것으로 웅어가 갈대사이에 알을 낳기 때문에 "위어"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갈대를 다시 심는 것도 숙고해 볼 일이다.
행주산성 인근 야산에서는 최근 30여평쯤 되는 석빙고가 발견됐다고 한다.
혹 그것이 옛 위어소 자리는 아니었을까. 한강의 명물 웅어가 사라져버린다면 그처럼 아쉬운 일도 없다.
한강하구가 맑아져야 웅어도 되돌아 올텐데 그때가 언제일지,썩어가는 김포의 한강하구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밥과 탕,그리고 찜 전골 김치 장류등 기본 찬 외에도 따로 12가지나 되는 반찬이 올려졌다. 이른바 "12첩 반상"이라는 것인데,그 중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회다.
늘 육회나 명산지에서 진상한 어패류의 생회가 상에 올랐다.
특히 5월 단오를 앞둔 요즘 같은 절기에 별미로 꼽혀 수라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웅어회였다. "한강 하류 행주에서 나온다. 늦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궁중의 사옹원 관리들이 그물로 잡아 왕에게 먼저 진상한다. 그 뒤 생선장수들은 시가지를 돌면서 웅어를 사라고 외친다. 이 물고기는 횟감이다"
영조때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나오는 이런 기록은 웅어의 명산지가 예부터 행주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1755년 간행된 "고양군지"에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50여일 동안 사옹원에서 행주에 위어소를 차려놓고 웅어를 진상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웅어는 위어라고도 불리는 가늘고 긴 칼 모양의 물고기다.
바다에서 자란뒤 4~5월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는다.
어미는 30cm나 되는 것도 있다. 웅어는 왕이 사는 곳을 그리워하는 물고기라는 전설도 전해온다.
70년대초까지만 해도 행주산성밑 한강변 마을에는 웅어횟집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 뒤 어획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해 요즘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웅어횟집은 장어구이집으로 모두 간판을 바꿔 달았다.
수질오염때문이라지만 행주나루 인근에 무성하던 갈대밭을 모두 없애버린 탓이라고도 한다.
"위"는 갈대를 뜻하는 것으로 웅어가 갈대사이에 알을 낳기 때문에 "위어"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갈대를 다시 심는 것도 숙고해 볼 일이다.
행주산성 인근 야산에서는 최근 30여평쯤 되는 석빙고가 발견됐다고 한다.
혹 그것이 옛 위어소 자리는 아니었을까. 한강의 명물 웅어가 사라져버린다면 그처럼 아쉬운 일도 없다.
한강하구가 맑아져야 웅어도 되돌아 올텐데 그때가 언제일지,썩어가는 김포의 한강하구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