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네마] 명작에 출연하면 車도 '스타'

특정 상품을 영화 속의 소도구로 이용해 광고효과를 보는 것을 PPL (Product Placement) 이라고 한다.

상품이 소도구로 이용되므로 직접적인 광고는 되지 않지만, 영화의 주요 장면에 상품이 교묘하게 배치됨으로써 잠재적인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상품엔 어떤 것이 있을까.

단연코 그 으뜸은 자동차다.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리즈물로 꼽히는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본드카는 PPL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표적 본드카인 애스턴 마틴을 시작으로 "007 리빙데이라이트"에선 독일의 아우디가 등장했고, 그 이후 "골든 아이"의 Z3를 시작으로 "네버 다이"에서의 750iL, "언리미티드"의 Z8까지 BMW가 계속해서 본드카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의 PPL은 어느 정도일까.

먼저 자동차와 관련된 웃지 못할 해프닝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1996년 발표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는 상갓집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린 영화로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그런데 이 영화에서 웃지 못할 장면이 나온다. 상갓집에 중년사내(김일우)가 새로 뽑은 현대자동차의 마르샤를 몰고 나타나는데, 꼬마 말썽꾸러기가 이 차에 불을 지른다.

그런데 잠시 후, 불타고 있는 차가 구형 쏘나타로 바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1억원이 넘는 BMW Z8을 두동강내는 외국영화를 보아온 영화인으로서 2천만원 안팎의 차 한 대를 구하기 위해 카메라 앵글을 요리조리 돌려댔을 스탭진이 무척 안쓰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산 자동차들은 할렘가의 퍼블릭카 아니면, 주인공 차에 무참히 부셔지는 싸구려 차로 등장한다.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역 PPL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말 아쉬운 것은 한국, 홍콩, 일본에 이어 유럽에서도 선풍적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우리 영화 "쉬리"를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쉬리"에 새로 개발된 국산 자동차를 주인공의 차로 제공했다면, 그 모델은 출시되기도 전에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PPL.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국산 자동차 메이커들은 각성할 지어라.

고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