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386세대와 도덕 논쟁..하용출 <서울대 외교학 교수>

최근 386세대들이 광주에서의 분별없는 음주행위,사회단체 인사의 성추행 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사회의 폭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건과 사태들 자체의 문제성을 부정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런 사태를 대하는 방식과 태도에는 이번 사건 자체를 넘어서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방식과 강도이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이 마치 원수라도 대하는 듯한 비난 자세를 택했다. 이는 언론을 통한다는 차이점 이외에 마치 옛날 시골에서 반도덕적 행위를 다루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동네 사람들에 의해 둘러 싸인 채,또는 주변의 세력에 의해 압도당하면서 기를 꺾고 그 이후 볼기 등을 맞는 의식이 진행됐다.

이런 방법의 근저에는 개인에게 진정한 반성보다 수치심의 자극을 통해 외부의 압력을 인정케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즉 경각심의 자극으로 외부로부터의 처벌과 창피함이 두려워 다시 유사한 행위의 반복을 어렵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얼핏 단기간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 심판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안정시키는데는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 항복은 상황적 복종은 가져올지 모르나 자기 잘못의 진정한 내면화의 계기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복종속에 은근한 반항이 잠복하게 된다.

이번 386 신인 정치 세대의 경우도 상황이 가져온 당혹감과 주변의 열화같은 압력으로 그들은 일시적 승복의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한번 짚어 보고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형식적 사과를 받아 낸채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번 사건과 사태들이 제기한 근본 문제들은 그냥 묻어둔채 지나갔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기성세대의 위선이 숨어 있다.

지난 2~3년동안 기성세대들이 벌인 각종 비리와 스캔들은 어떻게 처리됐나? 대부분 명확한 결론없이 끝났거나 심각한 반성없이 흘러갔다.

이러한 기성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행위들이 과연 후속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무슨 반성을 했단 말인가? 자신들의 거울인 후속 세대에게 막연한 도덕적 기대를 했던 자체가 문제는 아닌가? 동시에 지적돼야 할 것은 정치계의 쟁점과 이슈없는 정치행위들이 가져온 세대론과 도덕 논쟁이다.

원래 정책 지향성이 없는 나라의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바로 세대논쟁이다.

이는 자신들이 이뤄 놓지 못한 정치 풍토를 혁명도 없는 상황에서 후속 세대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높이게 하는 무책임한 숙명론에 지나지 않는다.

신진 세대에 대한 비난이 결코 기성 정치인의 도덕성을 높여주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성 정치인이 이번 사태를 신세대 길들이기 쯤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고 오히려 자신들의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이번 사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도덕의 상대화,파편화 현상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깊은 신화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지식의 축적,즉 교육 수준과 도덕 수준이 함께 간다는 믿음이다.

이런 신화는 유교의 본질인 학문이 곧 인간 관계나 도덕 교육과 밀접히 연관돼 있던 우리 전통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런 신화가 깨어진지 오래다.

우리는 수 없이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도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못했다.

한편으로 생존의 논리때문이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는 산업사회에 맞는 우리 전통 예의 범절의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일상적 인사에서 출발해 모든 예의 범절들이 사회 전체의 합의없이 불균형적으로 잊혀지거나 변모하면서 도덕적 기준들이 상대화됐다.

이런 와중에서 공부만 하면 당연히 인성은 부차적으로 따라 올 것으로 간주했다.

학교는 가정에,가정은 학교에 도덕 교육의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결과 멀쩡하게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상황마다 인간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모르는 사회기술의 무식꾼으로 전락했다. 이번 일련의 도덕성 시비를 보면서 일시적으로 사회 압력을 통한 도덕성 치유 전략이나 매도성 각성 촉구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인성 교육의 필요성은 물론 기성 세대의 도덕성 실적도 냉철한 자기 분석이 불가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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