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의 '경영노트'] '디렉티비, 靑出於藍 靑於藍'

지난달 15개 채널사용사업자들이 새로 승인됨으로써 케이블TV 업계 현안이 해결되자 이제 업계의 관심은 일제히 위성방송에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일진그룹이 지난달 위성방송사업 진출을 선언, 단일 컨소시엄 구성이 사실상 무산된 후 한국통신이 지난 주말 대규모 컨소시엄을 구성해 독자 노선에 본격 나섬에 따라 사업권 획득 경쟁에 불이 당겨졌다.위성방송의 세계 제일은 미국의 디렉티비(DirecTV, Inc.)다.

미국 위성방송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미국과 남미 일본 등지의 860만여명 가입자들에게 210개가 넘는 방송채널을 제공해 지난해 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작년 한국 TV 3사가 올린 매출총액보다 13%나 더 많은 액수다.휴즈 일렉트로닉스사의 핵심 사업부로서 다른 사업, 즉 위성통신서비스(매출 1조6천억여원)와 팬암샛위성 임대서비스(매출 8천7백억여원)를 능가한다.

다만 1994년 출범이래 가입자 수가 워낙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탓으로 안테나와 디코더 등 장비를 할부로 제공하느라 순이익은 올해에나 실현될 전망이다.

휴즈일렉트로닉스는 원래 인공위성 및 발사체를 만드는 방위산업체였다.우주항공 연구에 매료됐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1932년 설립했다.

하지만 나라님조차 감당키 힘든 값비싼 최고급 기술만 추구하며 6만3천명이 넘는 인력으로 방만한 경영을 일삼다 1986 제너럴 모터스(GM)에 인수됐다.

GM은 계절을 타는 자동차사업을 이로써 완화, 상쇄시키고자 했다.그러나 GM 산하에서도 휴즈의 비효율은 고쳐지지 않았다.

여기다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국방예산이 급감하자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다행히 IBM의 차기 대권 후보였던 마이클 암스트롱 국제영업담당 부사장이 92년 새 사령관으로 영입되며 운명이 역전됐다.

방위산업의 극심한 경기변동에 대응한 완충사업으로서 1990년부터 검토되던 위성방송 사업이 이때 탄력을 받아 적극 추진된 것이다.

9천억원이라는 거액의 초기 투자비 때문에 모기업인 GM도 꺼렸지만,휴즈를 방산업체에서 위성네트워크 회사로 전환시킨다는 암스트롱의 비전 아래 강행됐다.

사경을 헤매던 휴즈일렉트로닉스는 5년에 걸친 암스트롱의 탁월한 영도력 덕분에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암스트롱 회장은 97년 AT&T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의 비젼과 조직재구축 작업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위성 제작과 발사체 사업이 모두 보잉사로 매각되기 직전인 올해 3월말 휴즈일렉트로닉스의 싯가총액은 72조원을 넘어 GM 싯가총액 64조원을 압도하기도 했다(위성제작사업 양도 후 지금은 총 직원 1만6천명 안팎의 싯가총액 17조원 회사가 됐다).

이같은 변신은 거의 대부분 디렉티비 덕분이었다.

오죽했으면 지난 3월23일에는 디렉티비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사와 존 말로운의 리버티 미디어사가 GM 인수를 고려중이라는 CNBC 방송 보도도 있었다.

도무지 터무니없게 들리는 이 보도 내용은 당사자들에 의해 즉각 부인됐지만 이 디렉티비가 얼마나 탐나는 것인지 잘 보여준 일화였다.

1990년대 초의 제1세대 위성TV는 부피 큰 안테나와 비싼 디코더, 협소한 채널전송능력 등으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제2세대 위성기술을 채용한 디렉티비는 피자 크기의 작은 안테나와 저렴한 디코더, 수백개의 방송채널로 대히트를 치고 있다.

2002년부터는 제3세대 위성 기술을 활용해 수백개 더 많은 채널과 위성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아울러 제공할 계획이다.아버지 기업(휴즈)은 물론 할아버지 기업(GM)보다 빼어나게 된 디렉티비는 그야말로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다.

전문위원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