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6.15 공동선언'] '김대통령 평양 마지막밤'

김대중 대통령에게 14일은 "길고도 긴 하루"였다.

평양 방문 이틀째, 김 대통령은 오전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오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그리고 남북 화해.교류에 새 이정표를 세울 "남북공동선언"을 끌어냈다.

공동선언이 나오기까지 토론도 있었고 논쟁도 있었다.

이견이 드러나면서 회담장은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했다.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회담시간 3시간50분중 3시간40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간단치 않았던 회담과정을 전했다.

드러나지 않는 긴장감 속에서 극적인 선언을 도출했다는 사실은 정치역정 내내 "색깔시비"의 대상이 됐고 통일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온 김 대통령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을 수행한 한 인사는 15일 "동경 납치 때와 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를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긴 하루였을 것"이라고 말했다.김 대통령 고난사의 뿌리는 색깔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통령은 88년 서경원 의원 간첩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고 선거때마다 이념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선실 간첩사건 등 굵직굵직한 공안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97년 보수세력 대표를 자임하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고 집권에 성공한 뒤 햇볕정책을 추진했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당적, 범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며 평양행에 오른 지난 13일, 김 대통령을 비롯해 그 누구도 성과에 대해 자신하지 못했다.

김 대통령은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6.14 선언은 김 대통령에 또다른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언은 실천이 뒷받침돼야 의미가 있고 이제 그 출발선상에 섰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구상은 평양선언을 토대로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보람과 책무를 동시에 안겨준 14일 자정, 김 대통령은 각별한 감회에 젖어 평양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평양=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