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삼행시 열풍

"대체/머리 어느곳에/리본을 매란 말이냐""고인께/추도를 올려라/장례식은 대강 해라"

앞의것은 대머리,뒤의것은 고추장을 머리말로 한 삼행시다. 삼행시는 TV의 일일시트콤에서 시작된 뒤 PC통신과 인터넷채팅방을 통해 확산됐다.

사이버동호회가 생기고 "삼행시나라""모여라삼행시"등 홈페이지가 만들어지더니 경품을 걸고 삼행시짓기 이벤트를 벌이는 인터넷사이트도 늘어났다.

4월엔 청와대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와대"주제의 삼행시를 공모해 20명을 뽑아 어린이날 초대했고,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는 기말고사 문제로 삼행시짓기를 냈다. 삼행시의 주제는 대중없다.

연예인을 비롯한 사람이름이 많지만 해파리 올빼미 홍당무 마늘 열무처럼 의미없는 동식물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엔 "남북"과 "정상회담"이 화두로 등장했다. "남북이 조금만 있으면 통일을 한대요/북한에는 잘생긴 애들이 많을까"(북한을 향한 간절한 소망)

"남기면 안됩니다 동무/북쪽에서 이런걸 알면 곤란합네다"(음식문화)

테크노마트가 남북정상회담 경축이벤트로 마련한 "남북"주제 이행시 공모 출품작들로 젊은층의 북한에 대한 관심과 의식을 잘 나타낸다. 삼행시 열풍은 얼핏 온국민을 시인으로 만들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삼행시의 원조라 할 김삿갓류 풍자시는 비판정신의 산물이자 짓는이의 지적수준 가늠도구였다.

최근의 삼행시중에도 발제 전개 반전의 재치있는 삼단논법 구조에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시대의식을 담아낸 것이 있다.

그러나 촌철살인의 기지나 은근한 풍자로 읽는사람을 뜨끔하게 하거나 미소짓게 하는것보다는 쓴웃음을 자아내거나 읽기 민망한 유치하고 저질스런 음담패설류가 훨씬 더 많다.

맞춤법을 무시하고 부적절한 단어를 나열하는가 하면 무슨 까닭인지 조직폭력배의 어투를 본딴 시리즈까지 나오고 있다. 언어는 정신과 사고를 담는 그릇이다.

썰렁해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삼행시 유행이 가뜩이나 이미지만 중시하는 젊은층의 논리적 사고력을 저하시키고 파편화시킬까 마음졸이는 건 변화에 낯선 아날로그세대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