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한민족 시대가 온다 ..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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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이 있을 때와 만원이 있을 때는 먹고 싶은 게 달라진다.
독신일 때와 복작복작 살 때는 성향이 달라진다. 햇볕은 쨍쨍,모래알은 반짝 할 때와 비가 주룩주룩 내릴 때는 음악도 다르게 들린다.
냉전체제일 때와 평화공존체제일 때는 사람도 달라보이는 것 같다.
예전엔 배 나온 남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배만큼 탐욕스러워 보이더니 이제는 그 배만큼 뱃심이 있어 보인다. 우리 측 참모가 "클린턴에게 전할 말씀이 있냐"고 물었을 때 김 위원장이 이렇게 대답했단다.
"가서 본대로 전하시오"
그 당당함이 실제인지 이미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태도는 고구려의 후예를 연상시킨다. 김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와 함성으로 들뜬 평양거리에서,그 모습에 감격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정말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에너지가 많은 민족인가.
거대한 나라 중국의 한 귀퉁이에 작게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화에 동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삶의 양식이고 세계다.
"대국"의 인력권 안에 있으면서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우리식으로 보고 우리식으로 느끼는 언어를 갖고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면서 우리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하고 대견한 일이다.
그 일은 유럽 여러 나라들이 각각 자기식의 문화를 갖고 있는 것과도 다르다.
지리적으로 유럽대륙은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분열해 있다.
당연히 하나의 권력이 밀물처럼 세력을 확장해서 거대해지는 것이 어려웠다.
산맥이 권력과 문화를 분절했기 때문이다.
산맥이 분절해준 자리에서 독자적인 문화가 싹 트고 꽃이 피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중국문화권 한 구석에서 독특한 문화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애쓴 결과일까.
살기좋은 땅,바로 세계 4대문명이 발생한 그 터 옆자리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의상을 입었고 우리만의 음식을 먹었고 우리만의 언어를 사용했다.
중국 도자기는 어김없이 형식미가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도자기는 이지러진듯 안정감이 있고 소박하고 넉넉해서 자연스럽게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현대적"이라고들 한다.
삶의 숨통이 있고 생활의 여유가 숨쉬는 그 정신은 도자기에만 실현된 것이 아니다.
우리 민화는 중국 민화와 달리 친근하고 편하다.
호랑이민화만 해도 얼마나 해학적인가.
어디 미술 뿐일까.
중국이 짱꼴라를 입었다면 우리는 그 짱꼴라와 디자인에서도 완전히 다른 백의를 입은 민족이며,강산의 온갖 식물 동물을 우리식으로 요리해먹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밥상은 시각적으로는 꽃밭이고 내용적으로는 약상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세계가 분명히 있었다.
"중화"라는 용광로에 들어서서도 녹아나지 않는 우리는 얼마나 특별한 기를 가진 민족인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 미국에 대해서 옹골차게 저항하는 작은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외교는 국력의 연장"이라는 그 체념적인 말에 전세계가 얼마나 쉽게 동의했었나.
그러나 북한은 그 말을 무색하게 하는 유일한 나라다.
분명히 동조하기 힘든 정치체제를 갖고 있지만 미.북협상에서 미국에 대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북한의 태도는 우리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한민족의 옹골찬 기질이 아닐까.
사람들이 말한다.
"경계해야 한다"고,"이제 시작"이라고.
물론 그 감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생이 할퀴고 간 상처를 오랫동안 앓아온 인생들이 비틀린 민족사의 한복판에서 문득문득 한숨으로,눈물로 그리고 체념으로 기다려온 만남의 시작이다.
이제 그 감격만큼 냉정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희망이 보인다.
희망이 보이는 일은 난관이 많아도 어렵지 않다.
서로가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이 없다면,사심이 없다면 전망은 밝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렇지만 사심이 낀다면 오늘의 이 감격이 감격의 크기만큼 배반으로 돌아올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오늘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사심없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남과 북,두 지도자가 무심에서 시작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북한에 가고 싶다.
북한을 거쳐 대륙으로 뻗고 싶다. 섬도 아니면서 체제와 이념 때문에 섬으로 고립되어 비행기를 타지 않고는 다른 대륙으로 건너갈 수 없었던 그 고립의 시간들이 가고 있다.
ja1405@chollian.net
독신일 때와 복작복작 살 때는 성향이 달라진다. 햇볕은 쨍쨍,모래알은 반짝 할 때와 비가 주룩주룩 내릴 때는 음악도 다르게 들린다.
냉전체제일 때와 평화공존체제일 때는 사람도 달라보이는 것 같다.
예전엔 배 나온 남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배만큼 탐욕스러워 보이더니 이제는 그 배만큼 뱃심이 있어 보인다. 우리 측 참모가 "클린턴에게 전할 말씀이 있냐"고 물었을 때 김 위원장이 이렇게 대답했단다.
"가서 본대로 전하시오"
그 당당함이 실제인지 이미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태도는 고구려의 후예를 연상시킨다. 김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와 함성으로 들뜬 평양거리에서,그 모습에 감격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정말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에너지가 많은 민족인가.
거대한 나라 중국의 한 귀퉁이에 작게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화에 동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삶의 양식이고 세계다.
"대국"의 인력권 안에 있으면서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우리식으로 보고 우리식으로 느끼는 언어를 갖고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면서 우리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하고 대견한 일이다.
그 일은 유럽 여러 나라들이 각각 자기식의 문화를 갖고 있는 것과도 다르다.
지리적으로 유럽대륙은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분열해 있다.
당연히 하나의 권력이 밀물처럼 세력을 확장해서 거대해지는 것이 어려웠다.
산맥이 권력과 문화를 분절했기 때문이다.
산맥이 분절해준 자리에서 독자적인 문화가 싹 트고 꽃이 피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중국문화권 한 구석에서 독특한 문화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애쓴 결과일까.
살기좋은 땅,바로 세계 4대문명이 발생한 그 터 옆자리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의상을 입었고 우리만의 음식을 먹었고 우리만의 언어를 사용했다.
중국 도자기는 어김없이 형식미가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도자기는 이지러진듯 안정감이 있고 소박하고 넉넉해서 자연스럽게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현대적"이라고들 한다.
삶의 숨통이 있고 생활의 여유가 숨쉬는 그 정신은 도자기에만 실현된 것이 아니다.
우리 민화는 중국 민화와 달리 친근하고 편하다.
호랑이민화만 해도 얼마나 해학적인가.
어디 미술 뿐일까.
중국이 짱꼴라를 입었다면 우리는 그 짱꼴라와 디자인에서도 완전히 다른 백의를 입은 민족이며,강산의 온갖 식물 동물을 우리식으로 요리해먹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밥상은 시각적으로는 꽃밭이고 내용적으로는 약상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세계가 분명히 있었다.
"중화"라는 용광로에 들어서서도 녹아나지 않는 우리는 얼마나 특별한 기를 가진 민족인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 미국에 대해서 옹골차게 저항하는 작은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외교는 국력의 연장"이라는 그 체념적인 말에 전세계가 얼마나 쉽게 동의했었나.
그러나 북한은 그 말을 무색하게 하는 유일한 나라다.
분명히 동조하기 힘든 정치체제를 갖고 있지만 미.북협상에서 미국에 대해 주눅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북한의 태도는 우리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한민족의 옹골찬 기질이 아닐까.
사람들이 말한다.
"경계해야 한다"고,"이제 시작"이라고.
물론 그 감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생이 할퀴고 간 상처를 오랫동안 앓아온 인생들이 비틀린 민족사의 한복판에서 문득문득 한숨으로,눈물로 그리고 체념으로 기다려온 만남의 시작이다.
이제 그 감격만큼 냉정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희망이 보인다.
희망이 보이는 일은 난관이 많아도 어렵지 않다.
서로가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이 없다면,사심이 없다면 전망은 밝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렇지만 사심이 낀다면 오늘의 이 감격이 감격의 크기만큼 배반으로 돌아올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오늘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사심없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남과 북,두 지도자가 무심에서 시작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북한에 가고 싶다.
북한을 거쳐 대륙으로 뻗고 싶다. 섬도 아니면서 체제와 이념 때문에 섬으로 고립되어 비행기를 타지 않고는 다른 대륙으로 건너갈 수 없었던 그 고립의 시간들이 가고 있다.
ja1405@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