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 이젠 끝내자] (1) '샌드위치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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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은 정말 끝나는가.
노정(勞政)이 관치금융철폐를 국무총리 훈령 등으로 명문화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관치금융청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개발금융시대에 싹텄던 관치병은 ''근절시키자는 문서 몇 장''으로 사라지기 어려운 고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관치는 별다른 흔적이나 소리도 없이 유령처럼 찾아와 금융기관을 멍들게 한다.
이번 노정합의를 계기로 관치금융의 폐해와 근절방안을 시리즈로 모색해 본다.
===============================================================5만여명의 은행 노조원들이 정든 직장을 박차고 나가 사상 초유의 파업을 벌인 지난 11일.
이들을 호령해야 할 은행장들은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과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 등 정부관계자가 노조대표를 만나 21시간동안 마라톤 협상으로 타협을 이끌어냈다.은행장은 노조원을 만나 파업불참을 설득하거나 행내 방송으로 자제를 부탁하는 것이 한 일의 전부였다.
노조가 ''관치금융청산'', ''금융구조조정 유보'' 등 정책적 이슈를 내걸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했기 때문에 은행장이 낄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관치금융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노조가 주장한 관치금융청산이나 과거 부실처리문제 같은 주제는 마땅히 은행장들이 정부에 요구해야 할 몫이다.
정부의 압력을 막아내고 자율경영에 앞장서야 할 행장들이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사실은 그만큼 은행 인사나 경영에서 정부의 간섭이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금융노조가 파업 전야제를 가진 지난 10일 노정이 3차대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해프닝이 있었다.
금융노조측은 "국민 주택 기업 외환은행이 전야제 참가를 막기위해 직원을 퇴근시키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노조측은 "금감위에서 행장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금감위원장을 다그쳤다.
이 금감위원장은 "전화하면 그것이 바로 관치 아니냐"며 받아쳤지만 직원퇴근을 막고 있는 것도, 풀어주는 것도 행장이 아니라 금융당국이라고 믿는 노조의 불신을 풀지는 못했다.
자금경색을 막기위해 정부가 은행에 8조원의 채권매입자금을 할당했던 지난 6월말께 일이다.
노사간 단체협상 자리에서 노조측은 행장들에게 "정부에 공동으로 항의하는 합의문을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무너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을 이해할수 밖에 없던 은행장들에겐 부담이 큰 제의였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장은 "시장안정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데는 거부감을 느낀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김정태 주택은행장도 "이 펀드로 추가부실을 떠안아서는 안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고 고충을 토로했지만 합의문 서명은 거부했다.
은행장들이 이처럼 노.정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장들이 "알아서 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입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초 국민은행장으로 김상훈 금감원 부위원장이 부임했을 때 노조측에서 강력히 반발했던 것도 관치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는 탓이라 볼 수 있다.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은 "정부가 관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금융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금융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지시하거나 부탁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다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확립하고 사후에 책임지는 관행을 세우는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부실처리가 사후적인 것이라면 관치금융을 없애는 것은 부실을 막는 사전예방책의 하나"라며 "시장원리에 벗어난 개입은 시장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이찬근 인천대교수는 "노.사.정이 먼저 인사및 자금운용 등 유형별로 관치금융의 사례를 분석하고 대처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며 "이후 제도적 장치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
노정(勞政)이 관치금융철폐를 국무총리 훈령 등으로 명문화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관치금융청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개발금융시대에 싹텄던 관치병은 ''근절시키자는 문서 몇 장''으로 사라지기 어려운 고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관치는 별다른 흔적이나 소리도 없이 유령처럼 찾아와 금융기관을 멍들게 한다.
이번 노정합의를 계기로 관치금융의 폐해와 근절방안을 시리즈로 모색해 본다.
===============================================================5만여명의 은행 노조원들이 정든 직장을 박차고 나가 사상 초유의 파업을 벌인 지난 11일.
이들을 호령해야 할 은행장들은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과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 등 정부관계자가 노조대표를 만나 21시간동안 마라톤 협상으로 타협을 이끌어냈다.은행장은 노조원을 만나 파업불참을 설득하거나 행내 방송으로 자제를 부탁하는 것이 한 일의 전부였다.
노조가 ''관치금융청산'', ''금융구조조정 유보'' 등 정책적 이슈를 내걸고 정부를 상대로 투쟁했기 때문에 은행장이 낄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관치금융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노조가 주장한 관치금융청산이나 과거 부실처리문제 같은 주제는 마땅히 은행장들이 정부에 요구해야 할 몫이다.
정부의 압력을 막아내고 자율경영에 앞장서야 할 행장들이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사실은 그만큼 은행 인사나 경영에서 정부의 간섭이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금융노조가 파업 전야제를 가진 지난 10일 노정이 3차대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해프닝이 있었다.
금융노조측은 "국민 주택 기업 외환은행이 전야제 참가를 막기위해 직원을 퇴근시키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노조측은 "금감위에서 행장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금감위원장을 다그쳤다.
이 금감위원장은 "전화하면 그것이 바로 관치 아니냐"며 받아쳤지만 직원퇴근을 막고 있는 것도, 풀어주는 것도 행장이 아니라 금융당국이라고 믿는 노조의 불신을 풀지는 못했다.
자금경색을 막기위해 정부가 은행에 8조원의 채권매입자금을 할당했던 지난 6월말께 일이다.
노사간 단체협상 자리에서 노조측은 행장들에게 "정부에 공동으로 항의하는 합의문을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무너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을 이해할수 밖에 없던 은행장들에겐 부담이 큰 제의였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장은 "시장안정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데는 거부감을 느낀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김정태 주택은행장도 "이 펀드로 추가부실을 떠안아서는 안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고 고충을 토로했지만 합의문 서명은 거부했다.
은행장들이 이처럼 노.정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장들이 "알아서 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입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초 국민은행장으로 김상훈 금감원 부위원장이 부임했을 때 노조측에서 강력히 반발했던 것도 관치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는 탓이라 볼 수 있다.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은 "정부가 관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금융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금융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지시하거나 부탁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다만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확립하고 사후에 책임지는 관행을 세우는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부실처리가 사후적인 것이라면 관치금융을 없애는 것은 부실을 막는 사전예방책의 하나"라며 "시장원리에 벗어난 개입은 시장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이찬근 인천대교수는 "노.사.정이 먼저 인사및 자금운용 등 유형별로 관치금융의 사례를 분석하고 대처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며 "이후 제도적 장치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