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 이젠 끝내자] (3) '낙하산 인사' .. 이리저리 원격조종

"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지난 3월18일 국민은행 주주총회를 지켜본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국민은행은 그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심야 "작전"(주총)을 통해 김상훈 당시 은행감독원 부원장을 행장으로 선임했다.

노조는 "날치기 주총"이라며 행장출근 저지운동을 벌였다.

김 행장이 취임식을 갖기까진 그 후 열흘이 걸렸다.당시 행장 선임에는 헤드 헌터사까지 동원됐다.

은행법에도 없던 경영자 선정위원회가 만들어져 행장후보를 압축한 뒤 은행장추천위원회 추천과 사외이사 투표를 거쳐 최종 후보를 확정했다.

"진흙속의 진주"라도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그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뽑힌 사람은 전임 송달호 행장이 건강 때문에 사임하자마자 후임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관치인사 시비가 일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난 5월18일 외환은행 임시주총에서도 잡음이 생겼다.금감원이 주총 전날 퇴진해야 할 임원과 승진해야 할 임원 명단을 제시하는 등 임원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투신사나 정부 입김이 강한 다른 은행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이같은 낙하산 인사 시비는 현행 은행장 선임 제도 및 운영상의 문제점에서 비롯된다는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부는 국민은행장 선임 당시 관례로 돼 있는 은행장추천위원회 추천에 앞서 돌연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경영자 선정위원회를 만들어 행장후보를 선정하도록 했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행장추천위원회를 믿을 수 없다는게 금감위 논리였다.

그동안 사외이사 제도의 전면 도입을 권고해 왔던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제도를 갖춰 놓고도 실제 운용 과정에선 편법이 설친다.

행장추천위원회 구성에 정부기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금융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임된 행장의 자질과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선임 과정상의 문제까지 면죄받을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중 30%를 이사회에서 추천토록 하고 있는 현행 은행법도 논란거리다.

경영진 및 정부로부터 독립된 사외이사를 선임하려는 입법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의 사외이사로 임명됐다가 도중에 사표를 냈던 한 교수는 "사외이사 선출에도 관치의 손길이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관치금융은 사라졌다"고 단언하고 있다.

예전처럼 은행장을 정부가 직접 낙점하는 구태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한국 정부의 시장개입 정도를 슬로베니아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관치금융의 시작이다.

인사 시비가 일어나는 한 관치 논란도 끊길 수 없다.

관치논란이 있는 한 한국금융의 신인도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개혁의 시발점은 은행인사의 투명성 확보"라는 전문가들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이종욱 서울여대 경영경제학부 교수는 "관치금융이란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현직 감독기관이나 정부기관 관리가 행장를 노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며 "꼭 원한다면 사전 공직사퇴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