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실리콘밸리 '기밀누설주의보' .. '스텔스 전략' 도입

미국이 자랑하는 전투기 스텔스는 적군의 레이더망이나 탐지 센서에 포착되지 않는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벤처업체들 사이에도 이같은 특징을 이용,창업이나 신사업 발표 전에 사업계획을 철저한 비밀에 부치는 전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른바 "스텔스 전략"이다.

미국의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는 최신호에서 이같은 비밀주의가 어찌보면 개방성을 특징으로 삼는 인터넷 시대와 어긋나게도 보이지만 불꽃 튀기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레 나온 "고육책"일지도 모른다며 스텔스 전략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벤처 소프트웨어업체 그루브 네트웍스는 스텔스 전략을 도입한 일례다. 그루브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레이 오지 사장은 과거 컴퓨터 프로그램 "로터스 노트"를 개발,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지 사장의 경력을 고려할 때 그루브측이 로터스의 기능을 대폭 향상시킨 새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지는 못한다. 그가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 정보는 그루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절대 찾을 수 없다.

직원들도 입을 굳게 다문다는 각서를 쓰게 돼 있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이같은 스텔스 전략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 사이에서 "유별난 행동"으로 간주됐었다.

그러나 요즘은 벤처업체가 창업이나 신사업 계획 발표를 앞두고 사업 초기 1~2년간 모든 계획을 공개하지 않는 게 "벤처 가이드라인"처럼 자리잡았다.

올초 미국에서 열린 "PC포럼"에서도 제품 발표에 참여한 업체 중 절반 정도가 평균 1년정도의 "스텔스 단계"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스텔스 전략의 효과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팽팽하다.

"오픈 커뮤니케이션"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인터넷 시대를 거스르는 유행이라느니 그래도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보니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써야할 필수 전략이라느니 의견이 분분하다.

옹호론자들은 특히 이 전략이 초기 사업결정 단계나 경쟁업체에 대한 눈속임이 필요한 경우 단기적으로 기막히게 먹혀든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특히 대기업과 경쟁하는 벤처기업들에게 유용하다는 게 일반론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칩메이커인 인텔의 아성에 도전,화제가 된 벤처업체 트랜스메타는 대표적인 성공사례.

올초 혁신적인 성능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놓은 트랜스메타는 무려 5년간의 스텔스 기간을 거친 끝에 완제품을 발표,인텔의 견제와 추격을 성공적으로 따돌렸다.

궁금증을 유발시켜 충격적 홍보효과를 내는 것도 스텔스 전략의 장점이다.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기업이 마침내 사업발표를 하게 되면,세인의 관심 속에 화려한 데뷔를 할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다.

초기 사업단계에서 이미지 실추없이 실책을 만회하기 좋다는 것도 스텔스의 또다른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과도하게 오랜 기간 스텔스 단계에 머물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잘못하다간 오히려 세상에서 잊혀지거나 시장동향에 발맞추지 못해 성공의 기회를 잃는 수도 생기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투자한 벤처컨설팅업체 "인터벌 리서치"도 지나친 비밀주의를 고수하다가 아이디어를 상업화시킬 시점을 놓쳐버렸다.

폴 앨런은 올해 초 결국 자금지원 중단을 선언하고 말았다. 잘만 활용하면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지나칠 경우 기업 자체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