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체통옆을 지나다가

함정임

1주일에 한번 홍대앞에 있는 출판사에 가는데,갈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피카소 거리''라 일컬어지는 젊음과 예술의 거리 한 편에 우뚝 서 있는 유난히 큰 빨간 우체통 때문이다.

몇년 동안 그곳으로 매일 출퇴근하던 것을 작년에 그만 두고 1년여 동안 딴청 피우다가 지난 달부터 다시 거기를 지나 다닌다.

그런데 나 없는 사이 바뀐 다른 많은 풍경들을 챙겨볼 겨를도 없이 그 우체통이 제일 먼저 내 눈길을 끈다.내가 유난히 그 우체통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이 특별히 미적이어서가 아니다.

종전에 봐 왔던 것과는 두 배 정도 커진 데 대한 생경스러움 때문이다.

왜 저렇게 커졌을까.볼 때마다 의문이다.

커진 만큼 우편량이 많아졌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인가.그것으로 미루어 그만큼 우리가 인간다워진 것일까.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나를 두고 봐도 그렇다.

나는 요즘 전화보다 e메일을 애용한다.

또 종이 편지보다 더더욱 e메일을 편애한다.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해서,또는 수정을 해서 돌려 보내주어야 하는 서류가 아니면,소설 원고에서부터 국내외에 띄우는 거의 모든 메시지를 e메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일과도 e메일을 열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외출후나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메일을 점검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데 작아지기는 고사하고 두 배나 커진 우체통이라니-.도대체 누가 저 큰 우체통을 이용하는 것일까.

걷다가도 수시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피카소 거리의 주인공인 젊은 네티즌들이? 모를 일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득해지는 풍경들이 있다.

기차 기선 바다, 그리고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시골 우체국이나 우체통-.그러나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앞에 서 있곤 하는 홍대앞의 커다란 우체통은 아직 내 마음의 풍경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편량이 많아지기는커녕,인간다워지기는커녕,소통이 잘 되기는커녕,갑각류 같은 골뱅이 껍데기를 하나씩 꿰차고,도무지 밖을,우체통을 바라볼 생각을 못하는 우리에게 크기를 두 배로 해서라도 우체통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안간힘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바캉스 시즌이다.

해변으로 계곡으로 떠나거나,아니면 제 방에 틀어박혀 밀린 휴식을 취하다가 문득 펜을 들어보자.골뱅이 대신 바다처럼 짙푸른 종이에 여름 편지를 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