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의 '주식투자 클리닉'] '행복할땐 행복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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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모기업 대표와의 저녁식사에 우연히 초대된 적이 있다. 화제는 만인의 친구인 주식으로 왔고 나는 위험관리 어쩌구 떠들며 밥값을 했다.
한참 듣던 그 사장님은 수첩을 꺼내시더니 아예 메모까지 해가며 신기한 듯 경청을 하셨다.
그러던 차에 참석자들의 고견을 구한다며 고충 하나를 털어 놓으셨다. "공직에 있다가 몇 달전에 부임했는데 그간 회사가 크게 번창했다.
조직도 커졌고 인원도 많이 늘었다. 영리법인은 아니지만 매출이 엄청나게 증가해서 회사에 돈이 넘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인센티브(incentives)를 좀 주고 싶은데 명분이 없다. 기존 직원들이 딱히 뭘 잘해서 돈이 들어온 게 아니다. 그저 붐(boom)이 일어 뜻밖에 잘된 것뿐이다. 최근에 들어온 신입직원들은 더더욱 명분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이유를 들어 보너스를 줄 것이냐"는 게 그 사연이었다.
그 행복한 고민에 해결책이 궁한 듯 잠시 침묵이 흘렀고,덤으로 초대된 내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제 생각엔 너무 확실한 명분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그들이 있었다는 게 바로 그 확실한 명분입니다. 운도 실력입니다. 부잣집 자제가 어디 뚜렷한 명분이 있어 부자로 삽니까. 그런 부모를 만난 것도 복이고,따지고 보면 그게 그들 실력의 상당 부분입니다. 주식해서 크게 버는 것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꼭 무슨 정당성이 있어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마침 그 때 그 주식을 내가 들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때마침 돈이 넘치는 시기에 직원으로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고 남습니다.
따지고 들면 끝이 없습니다. 일생에 몇 번 없는 짜릿한 행복,이 기회에 실컷 즐기게 해 주십시오" 내 변이 끝나자 사장님은 벌어진 입을 다불며 "아,그렇군요..."하고 목이 타는 듯 술잔을 집으셨다.
후일담이지만 그날 이후 그 분 소개로 우리 클리닉을 찾아왔다는 환자들이 꽤 있었다.
보너스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 "인생은 고(苦)"다.
바탕색이 고통색인 도화지에 군데군데 행복의 점이 찍힌 그림이다.
경쾌한 듯해도 바닥엔 짙은 우수가 깔린 백지영의 "슬픈 살사(Sad Salsa)"같은 노래다.
생각해 보라.
행복에 겨워 환호를 올리는 게 다 합해봐야 몇날이나 되는지.
매년 생일날 하루 축하받고,휴가때 한 번 여행가고,3년을 빡빡 기어서 제대날 활짝 웃고,몇년을 씨름해서 합격날 한 잔 먹고,몇달을 뒤뚱거려 출산을 맞고,몇시간을 쳐서 오광한번 나고...
가끔씩 오는 행복을 양식삼아 잔잔한 고통들을 견디어 나가는 그게 인생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는 그 행복을 당당하게 맞고 마음껏 즐겨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온 몸에 흠뻑 적셔야 한다.
백년도 채 안되는 짧은 생을 사는 대가이기에 행복할 때 실컷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행복이 두렵다.
행복해야 되는 이유가 있어야 되고,그게 없이는 행복한 게 오히려 불안하다.
주식하는 이들은 특히 더 그렇다.
1년이라야 평균 두세달 반짝하는 장을 이유를 찾다가 그냥 흘려 버린다.
몇년에 한번씩 까무러치게 오를 때는 가치를 따지다 그 아까운 행운을 놓친다.
주식은 수백만의 고뇌와 환희가 뒤엉켜 있어 그 자체가 인생이다.
인생을 살듯이 주식인생도 그렇게 살면 된다.
먹여줄 때 양껏 먹고 그 뱃심으로 나머지 세월을 견디며 다음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면 먹을 때 못 먹는다. 먹을 때 못 먹어 놓으면 요즘처럼 굶을 때 너무 배가 고프다.
행복할 때 실컷 행복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