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가족 상봉] "백발되어 만났구려..." 흐느낀 望夫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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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살아있었구려. 날 용서하오"
"이렇게 살아서 만났으니 여한이 없어요"15일 서울에 온 북측 방문단 중에는 꽃같은 나이에 헤어진 부인을 만난 ''신랑''들도 여럿 있어 눈길을 모았다.
이제는 황혼기의 노인들이지만 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절절했다.
50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남녘 아내들의 ''망부가'' 또한 그 못잖게 애틋했다.북측 방문단의 김희영(72)씨는 부인 정춘자(73)씨와 반세기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김씨와 정씨가 생이별한 것은 전쟁중이던 스물한살때.
50년 6월초 일자리를 구한다며 서울로 간 남편이 전쟁통에 종무소식이 됐다.그리고 50년.
정씨는 전쟁통에도 혼자 아기를 업고 다니며 근근이 연명하면서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20대를 다 보내고 나서 서른이 돼서야 주변의 권유로 재혼, 3남1녀를 뒀으나 재혼한 남편마저 10여년만에 숨져 30여년 세월을 혼자서 살아왔다.북녘에소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씨는 "재혼도 하고, 자식도 제대로 못키웠는데..."라며 "볼 낯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생사도 모른 채 헤어졌던 어릴 적 신랑을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었다"며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경북 안동 출신의 리복연(73)씨는 부인 이춘자(72)씨를 만나 이별 반세기의 회한을 달랬다.
미안하다는 말만 꺼내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분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긴 하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제 구실을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말로는 다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부인 이씨는 남편과 생이별한 뒤 홀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며 수절했다.
이씨의 아들 지걸(55)씨와 호걸(51)씨는 "스물셋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의 얼굴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또 전남 화순군 동복면 칠성리가 본적지인 하경(74)씨는 아내 김옥진(78)씨와 이별의 반세기를 접었다.
하씨는 아내 김씨와 헤어질 당시 서울에서 사진촬영 기사로 활동한 멋쟁이였다.
기타도 잘 치고 겨울이면 스케이프를 즐기는 신식 남자였다.
전남 화순의 고향집에서 일찍이 상경, 서울에서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하씨는 남측의 상봉 대상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여동생 철휴(60.광주 서석동)씨등 다른 가족들을 찾으려 했다.
미안한 마음에 선뜻 찾아나설 수 없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철휴씨 등 다른 가족들이 아내의 생존사실을 전해줘 극적인 상봉을 이뤘다.
분단이 갈라놓은 청춘의 부부들은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돼 다시 만났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짧기만 하다.
50년을 기다려온 만남은 3박4일, 여섯번의 만남으로 일단 끝이다.천신만고 끝에 만난 남북의 노부부들의 표정엔 벌써 헤어질 걱정이 역력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이렇게 살아서 만났으니 여한이 없어요"15일 서울에 온 북측 방문단 중에는 꽃같은 나이에 헤어진 부인을 만난 ''신랑''들도 여럿 있어 눈길을 모았다.
이제는 황혼기의 노인들이지만 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절절했다.
50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남녘 아내들의 ''망부가'' 또한 그 못잖게 애틋했다.북측 방문단의 김희영(72)씨는 부인 정춘자(73)씨와 반세기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김씨와 정씨가 생이별한 것은 전쟁중이던 스물한살때.
50년 6월초 일자리를 구한다며 서울로 간 남편이 전쟁통에 종무소식이 됐다.그리고 50년.
정씨는 전쟁통에도 혼자 아기를 업고 다니며 근근이 연명하면서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20대를 다 보내고 나서 서른이 돼서야 주변의 권유로 재혼, 3남1녀를 뒀으나 재혼한 남편마저 10여년만에 숨져 30여년 세월을 혼자서 살아왔다.북녘에소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씨는 "재혼도 하고, 자식도 제대로 못키웠는데..."라며 "볼 낯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생사도 모른 채 헤어졌던 어릴 적 신랑을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었다"며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경북 안동 출신의 리복연(73)씨는 부인 이춘자(72)씨를 만나 이별 반세기의 회한을 달랬다.
미안하다는 말만 꺼내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분단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긴 하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제 구실을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말로는 다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부인 이씨는 남편과 생이별한 뒤 홀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며 수절했다.
이씨의 아들 지걸(55)씨와 호걸(51)씨는 "스물셋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의 얼굴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또 전남 화순군 동복면 칠성리가 본적지인 하경(74)씨는 아내 김옥진(78)씨와 이별의 반세기를 접었다.
하씨는 아내 김씨와 헤어질 당시 서울에서 사진촬영 기사로 활동한 멋쟁이였다.
기타도 잘 치고 겨울이면 스케이프를 즐기는 신식 남자였다.
전남 화순의 고향집에서 일찍이 상경, 서울에서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하씨는 남측의 상봉 대상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여동생 철휴(60.광주 서석동)씨등 다른 가족들을 찾으려 했다.
미안한 마음에 선뜻 찾아나설 수 없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철휴씨 등 다른 가족들이 아내의 생존사실을 전해줘 극적인 상봉을 이뤘다.
분단이 갈라놓은 청춘의 부부들은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돼 다시 만났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짧기만 하다.
50년을 기다려온 만남은 3박4일, 여섯번의 만남으로 일단 끝이다.천신만고 끝에 만난 남북의 노부부들의 표정엔 벌써 헤어질 걱정이 역력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