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가족 상봉] 흐느낀 望夫歌 .. 다시만난 '생이별' 부부

"살아있었구려.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이제라도 만나니 한이 없어요"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뤄진 이산가족들의 감격적 재회에는 꽃같은 나이에 헤어진 아내를 황혼에서야 만난 남편들이 많았다.

북이든 남이든 남편들은 지난 세월을 미안해 했고 아내들은 늦었지만 만남 그 자체로 이산 반세기의 회한을 녹였다.

이날 오후 4시40분 북측 방문단이 남측 가족들과 단체상봉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 3층 컨벤션홀.북측에서 온 김희영(72)씨는 동갑내기 부인 정춘자(경기 이천군 율면)씨를 선뜻 끌어안지 못했다.

김씨는 누나 옥동(80)씨와 조카 장명순(63.여)씨를 먼저 안은 뒤에야 정씨와 포옹하며 인사를 건넸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그리고는 아들 상교(52)씨를 끌어안았다.

김씨는 부인 정씨를 어색하지만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개가한 뒤 어떻게 살았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김씨는 또 "난 누이도 살아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는데..."라며 부인을 바라보기만 했다.부인 정춘자씨도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에 "재혼도 했고 아들도 제대로 못키웠는데 무슨 낯으로 남편을 보겠나"라며 걱정했던 정씨였다.

이들이 헤어진 것은 스물한살 때인 1950년 6월.

일자리를 구한다며 서울로 간 김씨가 전쟁통에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50년.

정씨는 혼자 아기를 키우면서 남편을 기다렸으나 서른이 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고 주위의 권유로 재혼한 남편과도 일찌감치 사별했다.

정씨는 "생사도 모른 채 헤어졌던 어릴 적 신랑을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었다"며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경북 안동 출신의 리복연(73)씨도 부인 이춘자(72)씨를 만나 이별 반세기의 회한을 달랬다.

리씨는 "미안하다"는 말만 꺼내 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 이씨는 홀몸으로 두아들을 키우며 수절했다.

이씨의 두아들은 "스물셋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아버지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평양에서도 부부상봉이 줄을 이었다.

남측 방문단중 부인 또는 처자식을 함께 만난 사람이 17명이나 됐다.

최경길(79.경기 평택시 팽성읍)씨는 부인 송옥순(75)씨의 손을 잡고 흐느끼다 끝내 대성통곡했다.

평북 박천 출신인 김사용(74)씨는 부인 이옥녀(72)씨와 딸 현실(51)씨를 부둥켜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쪽 아내들이 마련한 선물로 미담꽃도 피었다.

평북 희천군에 부인 박태용(72)씨와 아들 희영(53)씨를 남겨 두고 월남했던 최태현(70)씨는 박씨를 만나자 대뜸 금가락지를 내놨다.

"북쪽 가서 아내를 만나면 직접 끼워 주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부모님과 아이들, 시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주름진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환일(82)씨도 서울의 부인 한정오(73)씨가 눈물겨운 정성으로 만들어준 선물을 내밀었다.

북쪽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는 소식에 한씨는 자신이 평소 아끼던 금목걸이를 녹여 금반지 세개를 만들어 줬다는 것.

"하나는 당신, 두개는 아들.딸 하나씩 끼워 주라고 줬어"라며 북녘 아내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경북 안동에서 온 이춘자(70)씨는 50년만에 만난 남편 리복연(73)씨에게 "생각 같아선 괘씸한데 살아 있는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이날 남편을 만나자마자 "그래, 니(너) 자전거 사왔나?"라고 해 주위를 의아케 했다.

자전거 구한다고 나간 남편이 50년동안이나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남편 리씨는 "미안하오, 볼 면목이 없소"라며 아내의 손을 잡고 눈물을 떨궜다.

그래도 노부부의 애정은 반세기의 장벽을 금세 뛰어넘었다.

안동포로 한복을 새로 지어 입고 봉숭아로 손가락을 물들이며 멋을 낸 부인 이씨는 "50년 세월을 힘들게 살아왔다"며 한탄했다.

부산에서 온 김일선(81)씨는 북녘 아내 오상현(77)씨가 자신의 가슴에 파묻히며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요" "우린 이제 어찌합니까"라고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자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켜보던 북측의 여성안내원과 취재기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돼 다시 만난 이들 이산부부들은 분단의 아픔을 절감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