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 "어머니... 리별이 너무 모질었습니다"

''가셨단 말입니까.

정녕 가셨단 말입니까.아닙니다.

어머니 어머니.나는 그 비보를 믿고 싶지조차 않습니다.

너희들을 만날 때까지 꼭 살아있겠다고 하셨는데…(중략)''북한이 자랑하는 계관시인 오영재(64)씨는 16일 오전 10시46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워커힐 자신의 숙소에 부모님 사진과 북한에서 가져온 술로 차린 제사상을 마련했다.

상 왼편에는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시 원고를 올려놓은 뒤 큰 절을 올렸다.

창 아래로 넓고 푸른 강이 보이는 곳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즉석 제사를 올린 것이다.영재씨는 큰 절을 올린 뒤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절절히 배인 3편의 시를 낭송했다.

그가 시를 읽어가는 동안 방안은 일순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것도 잠깐.동생들이 서러움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면서 객실은 지난 95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 생각으로 처연한 흐느낌이 이어졌다.어머니 영정을 앞에 두고 영재씨는 또 한편의 사모곡을 읊조렸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차라리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해 버리셨다면 속고통 그리도 크시였으랴.통일이 되면 아들을 만나 불러보고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어 그날을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더는 못기다리셨습니까 어머니…(중략)''

영재씨의 회한은 이어졌다.

''어머니는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저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시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왜 먼저 세상을 뜨셨단 말입니까''

영재씨는 제사를 마친뒤 돌로 만든 부모님 영정과 북에서 가져온 술 등에 대해 형 승재(68·한남대 명예교수),동생 형재(63·서울시립대 교수),근재(60·홍익대 교수)씨 등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남쪽에서 우편으로 받은 부모님 사진을 ''돌사진''으로 만들어 영정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돌사진은 북한에만 있는 발명품으로 조그만 크기의 검은 화강암을 바늘로 쪼아 사진을 돌에 새겨넣은 것이다.

영재씨는 이렇게 만든 돌사진과 북에서도 희귀한 ''금강산참나무 열매술''을 준비해왔다.

영재씨는 남한의 시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남쪽의 시는 고은 김남주 박노해 김지하 같은 시인들의 작품들을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 시인의 시집을 북에 갈때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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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오영재

가셨단 말입니까
정녕 가셨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그 비보를 믿고 싶지조차 않습니다

너희들을 만날때까지
꼭 살아있겠다고 하셨는데

너의 작품, 너의 사진, 편지를 보는 것이
일과이고 락이라 하시며
몸도 건강하고 기분도 좋다고 하셨었는데...그 약속을 어기실 어머니가 아닌데
그 약속을 안믿을 아들이 아닌데
아, 약속도 믿음도
세월을 이겨낼 수 없었단 말입니까

리별이 너무도 길었습니다
분렬이 너무도 모질었습니다 무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