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발 줄자에 울고 웃었던 젊음의 靈歌..MBC 특별기획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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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한창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 초반.
어느날 그는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음악이 권력자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공화당으로부터 협박조 전화가 걸려왔다.
신씨는 대중작곡가라고 얕잡아보는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1주일동안 칩거하면서 노래를 지었다.
''아름다운 강산''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노래도 정부가 허락하는 것만 불러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머리를 기르는 것도, 미니스커트를 입는 일도 정부가 허락하는 만큼만 가능했던 금기의 시대였다.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불과 20여년 전에 이 땅위에서 벌어졌던 일이다.오는 20일 방영되는 MBC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연출 김환균, 오후 11시30분)는 건전가요와 금지곡이라는 미명으로 대중조작을 자행했던 7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문화정책을 낱낱이 해부한다.
69년 교련실시, 71년 위수령,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그리고 긴급조치로 이어졌던 70년대는 꿈과 이상을 먹고 사는 청년들에게는 한치의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암흑기였다.
이때 기타를 메고 ''물 좀 주소''를 외친 한대수의 출현은 탈출구를 찾던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그의 음악은 자유에 목말라하던 청년들에게 퍼져 나갔고 곧이어 청년문화의 리더 김민기 양희은 이장희가 뒤를 이었다.
청년들은 노래를 통해 시대를 은유했고 갑갑한 현실을 풍자했다.
정권은 결코 이를 방치하지 않았다.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와 함께 ''노래의 분서갱유''가 시작됐다.
대중들은 귀와 입을 빼앗겼다.
75년 6월에 발표된 공연정화대책은 2백22곡을 금지곡으로 선고했다.
''한국 가요계를 30년이나 후퇴시킨 사건''이라는 통탄이 쏟아졌다.''이제는…''은 유신 이후 군사정권의 문화정책이 체제안정을 위한 국민의식과 정신개혁 작업이었음을 당시 권장됐던 유신의 노래들과 금지곡들을 통해 밝힌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어느날 그는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음악이 권력자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공화당으로부터 협박조 전화가 걸려왔다.
신씨는 대중작곡가라고 얕잡아보는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1주일동안 칩거하면서 노래를 지었다.
''아름다운 강산''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노래도 정부가 허락하는 것만 불러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머리를 기르는 것도, 미니스커트를 입는 일도 정부가 허락하는 만큼만 가능했던 금기의 시대였다.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불과 20여년 전에 이 땅위에서 벌어졌던 일이다.오는 20일 방영되는 MBC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연출 김환균, 오후 11시30분)는 건전가요와 금지곡이라는 미명으로 대중조작을 자행했던 7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문화정책을 낱낱이 해부한다.
69년 교련실시, 71년 위수령,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그리고 긴급조치로 이어졌던 70년대는 꿈과 이상을 먹고 사는 청년들에게는 한치의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암흑기였다.
이때 기타를 메고 ''물 좀 주소''를 외친 한대수의 출현은 탈출구를 찾던 청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그의 음악은 자유에 목말라하던 청년들에게 퍼져 나갔고 곧이어 청년문화의 리더 김민기 양희은 이장희가 뒤를 이었다.
청년들은 노래를 통해 시대를 은유했고 갑갑한 현실을 풍자했다.
정권은 결코 이를 방치하지 않았다.
1975년 5월 긴급조치 9호와 함께 ''노래의 분서갱유''가 시작됐다.
대중들은 귀와 입을 빼앗겼다.
75년 6월에 발표된 공연정화대책은 2백22곡을 금지곡으로 선고했다.
''한국 가요계를 30년이나 후퇴시킨 사건''이라는 통탄이 쏟아졌다.''이제는…''은 유신 이후 군사정권의 문화정책이 체제안정을 위한 국민의식과 정신개혁 작업이었음을 당시 권장됐던 유신의 노래들과 금지곡들을 통해 밝힌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