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144) 제2부 : IMF시대 <1> 복수 (9)

글 : 홍상화

진성호는 객석으로 들어갔다.무대 위에서는 뮤지컬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그대,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출연자들이 박정희를 향해 소리쳤다.무대가 어두워지고 박정희에게 조명이 비쳐지며,박정희의 독백이 시작되었다.

''착한 사람들이여! 내가 사랑하는 국민이여!/이것을 내 작별의 말로 받아들여다오/나 때문에 어느 누가 어떤 고통을 받았든간에/늙은 노인의 서글픈 임종을/그대들이 받은 고통의 보상으로 받아다오/먼 훗날,아시아의 강국이 된 한반도를 내려다보며/우리의 후손이 맛볼 수 있는 기쁨이 있다면/그 기쁨을 그대들 모두에게 들려주겠다''

박정희가 원통 속으로 사라진다.곧이어 무대 위 출연자들이 무대 오른쪽으로 옮겨 도열하고,김명희는 퇴장하여 정치인으로 보이는 다른 무리들을 이끌고 나온다.

''나라 경제가 쑥대밭이 되어도 자유/민족의 아들들이 뚜쟁이가 되어도 자유/민족의 딸들이 창녀가 되어도 자유/자유 없이 우리 정치인이 설 곳이 어디냐?''

합창을 끝낸 출연자들이 운무 사이로 원통 속에서 솟아오르는 박정희에게 소리친다.''박 장군! 이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무대가 캄캄해지고 박정희에게 조명이 비쳐지며 박정희의 독백이 시작된다.

''정치꾼들아! 너희들에게 엄숙히 경고하느니라/역사가 또다시 미쳐버려 그대들을 벌하지 않는다면/서글픈 부모가 짓는 한숨이 대지를 뒤집는 회오리바람이 되어/그대들 정치꾼들의 더러운 육체를 날려버릴 것이다/그때 나는 하늘에서 손을 길게 뻗어 내 긴 손톱으로 / 그대들의 가슴을 파고들 것이다''

박정희의 독백이 끝나면서 막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막이 조금 내려갔을 때,무대 뒤에서 한 청년이 뛰어나와 무대 위에 엎어진다.

청년이 흐느끼면서 소리친다.

''아버지!(흐느끼면서) 저에게도 한마디 해주십시오''

''아! 내 조그마한 심장이 수백 수천 갈래로 갈라 터져/온몸의 피가 목구멍으로 치받아 올라온다/어머니를 빼앗기고 넋을 잃은 듯한 어린 너를 보았을 때/컴컴한 청와대 넓은 복도를 걸으며 나와 스쳐갈 때/공부하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든 너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나는 수천 발의 흉탄이 내 가슴을 산산조각 내는 것보다/더 아픈 고통을 맛보았다.그러면서 나는 한없이 후회했다//옛날 야구장에 가자는 너의 조그마한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던 것을/어느 날 아침 위험한 장난을 한다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 것을/그리고 나는 그때 깨달았다/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그러나 어린 아들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간 아비가/무슨 방법으로 사랑을 표시할 수 있었겠느냐/불쌍한 아들아! 이 말을 내가 너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로 받아다오/너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비가 용서를 빈다는 말을'' 진성호는 눈물이 자신의 뺨을 흘러내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얼른 정신을 차려 뺨의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