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한 순간의 꿈이 될 수는 없다 .. 정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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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키 어려웠던 지난 사흘.
이제 짧은 상봉을 뒤로 하고 북에서 온 이산가족들을 태운 항공기가 서서히 활주로를 이륙하기 시작했다.잘 가시라.다시 만날 때까지.그리운 얼굴,얼굴이여.
나는 속울음을 삼키고 은빛 비행기의 양날개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얼마나 많은 회한과 그리움,그리고 사연들을 남기고 서울에서 평양에서 저들은 떠나고, 떠나오는지.생각하면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계속돼야 하는 것인지.
워커힐에서 버스에 승차한 후에도 자리로 가지 못하고 이마에 손을 짚고 남쪽의 가족들을 바라보던 사내의 모습이 영 잊혀지지 않는다.
이별인가.정녕 이것은 이별의 자리인가.
불과 사흘간의 만남,그리고 헤어짐이라니.
50여년을 기다려온 이 만남이 짧은 해후 이후에 기약 없는 이별이더란 말인가.혹시 이것은 괜한 만남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다시 못 볼 사람들.
그런 이산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오,헤어짐의 슬픔이여.
오래 오래 살아서 다시 보자고 부르짖는 남과 북의 가족들 앞에서 나는 말을 잃는다.
지난 사흘간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산 가족들을 떠올리며 뒤척였다.
어디 나뿐이랴.
바람에 파도치며 일렁이는 수면을 걷어내고 보면 우리 민족의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나 분단의 한이,이산의 이웃이,야속한 세월에 희생된 세대가 놓여 있다.
이제 이런 짧은 만남 이후에 이 가련한 이산 가족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이들보다 몇십 배,몇백 배 더 많은 이산 가족들은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3박4일간의 짧은 만남은 끝나고 이별의 날은 밝아왔다.
지척에 두고도 노환으로 상봉장에 나오지 못한 어머니를 보고 싶어 애태우다 지난밤에 극적으로 만난 아들의 절규,남과 북에 아내를 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처연한 눈빛,상봉 예정 명단에서 탈락한 후 북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모르느냐"고 부르짖으며 아흔살이 넘었을 부모를 찾는 칠순 아들의 마지막 호소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하염없이 울어도 끝나지 않을 이 자리에서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기력하다.
많은 우리의 이산 가족들이 이 기쁨의 자리에 애초에 서지도 못했건만 아쉬움은,이별의 아픔은 조금도 덜해지지 않는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나리.
오늘 하루만 더 이들을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들이 남과 북의 서로의 집에 가서 하룻밤이라도 같이 머물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이제 남과 북은 겨우 상호 신뢰라는 도정의 첫걸음을 막 떼어 놓았을 뿐인데 어찌하랴.
아들을 만난 충격으로 몸져 누운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짐작 못하겠다.
한번만 봐도 여한이 없겠노라던 어머니가 매일매일 아들을 볼 수 없겠는가 하는 그 부르짖음을 나는 듣지 못하겠다.
과연 이별인가.
이제 이 이별의 자리에 서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짧은 상봉 후 헤어지는 이산의 가족들이여.
회포를 다 풀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이 아픔이 어찌 당신들만의 것이랴.
이제 희망은 저 어두운 절망 속에서도 염염히 싹터온다.
50년 이산의 아픔은 서로 다른 아내들 사이에서의 소생들을 이제 비로소 상봉의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과 딸로 받아들이고 잘 부탁한다고 말하게끔 했다.
이제 준비하자.
서울에서 평양에서 남에서 북에서 준비하자.
서로가 손을 잡고 상생의 터전으로 끈기 있게 나아가자.
서로가 신뢰의 벽돌 한 장,한 장을 쌓아올리자.
어찌 이 만남이 마지막일 수 있는가.
생이별은 다시 없다.
지난 사흘간,온겨레가 울고 있었다.
세계가 이 짧은 만남을 주목했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이 소중한 한 발 디딤을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는 진정 의미있는 첫 발걸음으로 부르자.
재결합의,민족의 화학적인 결합의 그날까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정은숙 시인 sunkinn@yahoo.co.kr---------------------------------------------------------------
필자 약력=이화여대 정치학과 졸업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이제 짧은 상봉을 뒤로 하고 북에서 온 이산가족들을 태운 항공기가 서서히 활주로를 이륙하기 시작했다.잘 가시라.다시 만날 때까지.그리운 얼굴,얼굴이여.
나는 속울음을 삼키고 은빛 비행기의 양날개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얼마나 많은 회한과 그리움,그리고 사연들을 남기고 서울에서 평양에서 저들은 떠나고, 떠나오는지.생각하면 언제까지 이런 비극이 계속돼야 하는 것인지.
워커힐에서 버스에 승차한 후에도 자리로 가지 못하고 이마에 손을 짚고 남쪽의 가족들을 바라보던 사내의 모습이 영 잊혀지지 않는다.
이별인가.정녕 이것은 이별의 자리인가.
불과 사흘간의 만남,그리고 헤어짐이라니.
50여년을 기다려온 이 만남이 짧은 해후 이후에 기약 없는 이별이더란 말인가.혹시 이것은 괜한 만남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다시 못 볼 사람들.
그런 이산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오,헤어짐의 슬픔이여.
오래 오래 살아서 다시 보자고 부르짖는 남과 북의 가족들 앞에서 나는 말을 잃는다.
지난 사흘간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산 가족들을 떠올리며 뒤척였다.
어디 나뿐이랴.
바람에 파도치며 일렁이는 수면을 걷어내고 보면 우리 민족의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나 분단의 한이,이산의 이웃이,야속한 세월에 희생된 세대가 놓여 있다.
이제 이런 짧은 만남 이후에 이 가련한 이산 가족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이들보다 몇십 배,몇백 배 더 많은 이산 가족들은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3박4일간의 짧은 만남은 끝나고 이별의 날은 밝아왔다.
지척에 두고도 노환으로 상봉장에 나오지 못한 어머니를 보고 싶어 애태우다 지난밤에 극적으로 만난 아들의 절규,남과 북에 아내를 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처연한 눈빛,상봉 예정 명단에서 탈락한 후 북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모르느냐"고 부르짖으며 아흔살이 넘었을 부모를 찾는 칠순 아들의 마지막 호소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하염없이 울어도 끝나지 않을 이 자리에서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기력하다.
많은 우리의 이산 가족들이 이 기쁨의 자리에 애초에 서지도 못했건만 아쉬움은,이별의 아픔은 조금도 덜해지지 않는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나리.
오늘 하루만 더 이들을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들이 남과 북의 서로의 집에 가서 하룻밤이라도 같이 머물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이제 남과 북은 겨우 상호 신뢰라는 도정의 첫걸음을 막 떼어 놓았을 뿐인데 어찌하랴.
아들을 만난 충격으로 몸져 누운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짐작 못하겠다.
한번만 봐도 여한이 없겠노라던 어머니가 매일매일 아들을 볼 수 없겠는가 하는 그 부르짖음을 나는 듣지 못하겠다.
과연 이별인가.
이제 이 이별의 자리에 서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짧은 상봉 후 헤어지는 이산의 가족들이여.
회포를 다 풀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이 아픔이 어찌 당신들만의 것이랴.
이제 희망은 저 어두운 절망 속에서도 염염히 싹터온다.
50년 이산의 아픔은 서로 다른 아내들 사이에서의 소생들을 이제 비로소 상봉의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과 딸로 받아들이고 잘 부탁한다고 말하게끔 했다.
이제 준비하자.
서울에서 평양에서 남에서 북에서 준비하자.
서로가 손을 잡고 상생의 터전으로 끈기 있게 나아가자.
서로가 신뢰의 벽돌 한 장,한 장을 쌓아올리자.
어찌 이 만남이 마지막일 수 있는가.
생이별은 다시 없다.
지난 사흘간,온겨레가 울고 있었다.
세계가 이 짧은 만남을 주목했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이 소중한 한 발 디딤을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는 진정 의미있는 첫 발걸음으로 부르자.
재결합의,민족의 화학적인 결합의 그날까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정은숙 시인 sunkinn@yahoo.co.kr---------------------------------------------------------------
필자 약력=이화여대 정치학과 졸업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