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줄타기' 남북관계

"남한 사람들은 요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마치 발끝으로 걷고 있는 것 같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9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이같이 보도했다.모처럼 개선되고 있는 대북관계를 깰까봐 남측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간 연례 군사훈련인 을지훈련을 축소해 실시하고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도 불구하고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을 즉각 요구하지 않은 점 등을 그 사례로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언론들도 소리를 죽이고 있다"는 전문가의 비판도 전했다.이에 앞서 워싱턴 포스트도 지난 27일자 사설에서 8·15 이산가족 상봉때 집단상봉 등 ''전체주의적'' 방식이 도입된 데 대해 남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북한에 팽배한 ''공포 분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국 언론의 이같은 지적은 남북관계의 미묘한 현실을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남측이 북측의 요구와 주장에 끌려다니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30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도 그런 경우다.

회담 날짜가 한달 전에 잡혔는데도 남측 대표단은 구체적인 일정과 의제를 확정짓지 못한 채 평양으로 떠나야 했다.평양에 도착해서도 일정에 관해 실무협의를 했지만 회담은 아랑곳없이 북측이 짜놓은 일정대로 공연관람과 만찬으로 첫날을 보냈다.

방북 교통편도 출발전날인 28일 저녁에야 확정됐다.

남측은 판문점을 통한 육로방북을 제시했으나 북측이 항공편을 고집,결국 북측의 뜻대로 됐다.

이 과정에서 북측이 왜 항공편을 주장했는지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설명은 철저히 생략됐다.

남북은 회담의 생산적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짧은 기간 두 차례의 회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보다 안정적인 개선을 이루려면 결과 못지 않게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고 예측가능해야 할 뿐더러 이견은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회담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줄타듯해서야 어디 진정한 관계개선,상호주의적 관계의 정착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화동 정치부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