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수학의 역사가 중요한 까닭..박성래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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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대만의 타이베이에서는 수학사(數學史)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수학사를 어떻게 수학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모임이었다.초청 강사로 참석했던 나는 세번 놀랐다.
첫째 한국 참가자가 없어 놀랐고,둘째 중고교 교사가 많아서 놀랐고,셋째 대만 대학원생이 한국과 중국의 수학 교류사(交流史)에 관해 박사논문을 쓰겠다며 지도를 부탁하는 바람에 놀랐다.
첫째 놀란 일은 우리나라 참가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세계 18개국에서 1백50명,대만에서 1백50명,모두 3백명이 참가했던 이번 모임에 한국에선 나 말고는 정식참가자가 한사람도 없었다.
이 사실이 한국의 수학교육에서는 수학사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 모임은 3년마다 여러 나라를 돌아가면서 열리는데 유네스코 산하단체의 한 기구로 돼 있다.2년 전인가.
서울의 수학사학회서 강연한 기억이 생생하니 우리나라에 수학사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물론 수학사 연구나 보급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줄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이거야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수학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수학 그 자체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로 중고교 교사들이 많아 놀랐다는 사실을 강조해 두고 싶다.
물론 ''수학 교육에 수학사를 활용하는 문제''가 주제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요즘 국제회의에 가보면 중등 교사들의 참석이 두드러진다.
이번 대만 회의에서도 프랑스의 청년 교사 한 사람은 유럽에 많은 성곽(城郭)을 짓는데 어떤 기하학적 지식을 어떻게 활용했던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발표를 했다.
그밖에도 여러 교사들이 발표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중고교 교사들이 국제회의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셋째로는 회의가 열렸던 대만사범대(臺灣師範大) 대학원의 박사과정 학생이 내게 중국과 한국의 고대 수학 교류사를 연구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놀랐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고대 수학 교류사를 학위논문으로 써보겠단다.
금방 떠오르는 사실은 세종은 정인지로부터 수학을 공부했다는 ''세종실록''기록이다.
5백여년 전 경복궁 어느 방에서 임금과 신하가 마주 앉아 공부한 텍스트는 주세걸(朱世傑)의 ''산학계몽(算學啓蒙)''이란 중국 수학서였다.
이 책은 원래 중국 학자가 쓴 책이지만,막상 중국에서는 일찍 사라진채 조선에만 전해져 오다 뒤에 중국에 다시 전해진 기구한 운명을 가진 책이다.
내게 도움을 청한 그 대학원생의 지도교수인 대만사범대 홍완셩 교수도 이번에 발표를 했는데,그의 논문은 바로 19세기 조선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남병길(南秉吉)의 ''무이해(無異解·1855)''에 관한 것이었다.
외국에 가서 그곳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관해 연구하고 있고,또 연구하겠다는 말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홍 교수와 그 대학원생의 말을 들으며 마음 속이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그 대학원생을 몇 달이라도 한국에 와서 연구할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게 그런 실력은 없다.
더구나 이런 그들의 한국수학사 연구 의욕을 들으며 나는 우리 역사마저 외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엉뚱한 위기의식도 느꼈다.
''지식사회''가 어떠니,''정보화사회''가 왔느니하며 야단들이다.
그러나 막상 그 핵심되는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돈 잘 버는데 도움되는 지식이나 정보만이 중요하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물론 그런 실용적 지식과 쓸모있는 정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야 이해할만 하다.
그렇지만 폭넓은 지식의 기반이 없고서는 그런 실용적이고 당장 쓸모있는 지식이나 정보란 설 자리가 없다.
수학이 중요하고 수학의 역사도 중요한 까닭은 그런 간접적 유용성에 있다.아니 그보다 수학사는 ''골치아픈 것으로 유명한 수학''을 좀 더 흥미있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양념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걸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안타깝다.
수학사를 어떻게 수학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모임이었다.초청 강사로 참석했던 나는 세번 놀랐다.
첫째 한국 참가자가 없어 놀랐고,둘째 중고교 교사가 많아서 놀랐고,셋째 대만 대학원생이 한국과 중국의 수학 교류사(交流史)에 관해 박사논문을 쓰겠다며 지도를 부탁하는 바람에 놀랐다.
첫째 놀란 일은 우리나라 참가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세계 18개국에서 1백50명,대만에서 1백50명,모두 3백명이 참가했던 이번 모임에 한국에선 나 말고는 정식참가자가 한사람도 없었다.
이 사실이 한국의 수학교육에서는 수학사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 모임은 3년마다 여러 나라를 돌아가면서 열리는데 유네스코 산하단체의 한 기구로 돼 있다.2년 전인가.
서울의 수학사학회서 강연한 기억이 생생하니 우리나라에 수학사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물론 수학사 연구나 보급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줄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이거야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수학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수학 그 자체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둘째로 중고교 교사들이 많아 놀랐다는 사실을 강조해 두고 싶다.
물론 ''수학 교육에 수학사를 활용하는 문제''가 주제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요즘 국제회의에 가보면 중등 교사들의 참석이 두드러진다.
이번 대만 회의에서도 프랑스의 청년 교사 한 사람은 유럽에 많은 성곽(城郭)을 짓는데 어떤 기하학적 지식을 어떻게 활용했던가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발표를 했다.
그밖에도 여러 교사들이 발표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중고교 교사들이 국제회의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셋째로는 회의가 열렸던 대만사범대(臺灣師範大) 대학원의 박사과정 학생이 내게 중국과 한국의 고대 수학 교류사를 연구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놀랐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고대 수학 교류사를 학위논문으로 써보겠단다.
금방 떠오르는 사실은 세종은 정인지로부터 수학을 공부했다는 ''세종실록''기록이다.
5백여년 전 경복궁 어느 방에서 임금과 신하가 마주 앉아 공부한 텍스트는 주세걸(朱世傑)의 ''산학계몽(算學啓蒙)''이란 중국 수학서였다.
이 책은 원래 중국 학자가 쓴 책이지만,막상 중국에서는 일찍 사라진채 조선에만 전해져 오다 뒤에 중국에 다시 전해진 기구한 운명을 가진 책이다.
내게 도움을 청한 그 대학원생의 지도교수인 대만사범대 홍완셩 교수도 이번에 발표를 했는데,그의 논문은 바로 19세기 조선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남병길(南秉吉)의 ''무이해(無異解·1855)''에 관한 것이었다.
외국에 가서 그곳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관해 연구하고 있고,또 연구하겠다는 말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홍 교수와 그 대학원생의 말을 들으며 마음 속이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그 대학원생을 몇 달이라도 한국에 와서 연구할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게 그런 실력은 없다.
더구나 이런 그들의 한국수학사 연구 의욕을 들으며 나는 우리 역사마저 외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엉뚱한 위기의식도 느꼈다.
''지식사회''가 어떠니,''정보화사회''가 왔느니하며 야단들이다.
그러나 막상 그 핵심되는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돈 잘 버는데 도움되는 지식이나 정보만이 중요하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물론 그런 실용적 지식과 쓸모있는 정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야 이해할만 하다.
그렇지만 폭넓은 지식의 기반이 없고서는 그런 실용적이고 당장 쓸모있는 지식이나 정보란 설 자리가 없다.
수학이 중요하고 수학의 역사도 중요한 까닭은 그런 간접적 유용성에 있다.아니 그보다 수학사는 ''골치아픈 것으로 유명한 수학''을 좀 더 흥미있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양념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걸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