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168) 제2부 : IMF시대 <3> 폭풍 후 (11)

글 : 홍상화

황무석과 이미지는 아무 말 없이 입원병동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칸막이로 된 간호사 대기실로 갔다.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잠시 서 있다가 황무석은 입원 환자 이름과 병실호수가 적힌 보드에 눈길을 주었다.이정숙 교수는 408호실에 입원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간호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황무석과 이미지는 408호실에 이정숙의 어머니가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발길을 옮겼다.황무석은 이정숙의 병실문을 노크했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황무석은 살며시 병실문을 열었다.이정숙의 어머니는 없고,침대에는 이정숙이 잠들어 있는 듯했다.

호스가 그녀의 코에 끼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도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듯했다.

황무석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 밖에 서 있는 이미지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이미지도 들어왔다.

황무석은 병실문을 닫은 후 침대 옆 소파에 앉으며,머뭇거리고 서 있는 이미지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했다.

"조금 기다리면 이정숙씨 어머니가 올 거야.어디 잠깐 나갔겠지.환자를 혼자 두지는 않을 테니까…"

황무석이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미지에게 말했다.

10분쯤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다.

바깥도 안도.

문득 침대 옆 탁자에 무슨 쪽지가 눈에 띄었다.

황무석은 일어나 쪽지를 집어들고 소리내어 읽었다.

''당직 간호사에게:딸이 잠들어서 내일 아침 일찍 올게요.어머니''

황무석이 쪽지를 탁자에 내려놓은 순간 이미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실문을 홱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황무석은 어리둥절했다.

그도 바로 병실을 나왔다.

그가 엘리베이터 앞에 왔을 때 엘리베이터는 이미 막 내려간 후였다.

황무석은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건물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미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병원 정문 쪽으로 뛰어갔다.

방금 전 이미지와 같이 앉아 있었던 벤치를 지나치는 순간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이미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들썩였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황무석이 그녀 옆에 앉았다.

"이정숙 교수 너무너무 불쌍한 여자예요"

이미지가 흐느끼며 말했다.

황무석은 그렇게 말하는 이미지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니야.이정숙은 불쌍한 여자가 아니야.이 세상에서 벌을 받을 여자가 있다면 이정숙이야.왠지 알아?"

이미지는 흐느낌을 멈추고 황무석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정숙은 사업에 전심전력하는 남편이 있는데도 정동현이라는 텔레비전 토크쇼 사회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던 여자야.이정숙은 그런 짓을 하면서도 진 회장 소유의 주식 절반을 이혼조건으로 내건 악질 중의 악질이라고.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회사의 약점을 사직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공갈범이란 말이야…""그게 사실이에요?"

황무석의 다소 격앙된 말에 이미지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