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러브 호텔 .. 오세훈 <한나라당 국회의원>

오세훈

가을이다.어린시절 등교길은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길이었다.

팔을 휘저으며 뛰어가면 코스모스는 인사하듯 출렁거렸고,함께 가는 개구쟁이 친구와는 늘 장난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의 등교길은 그랬는데….며칠전 일산의 러브호텔촌에 현장 조사를 나갔다.

흥분해서 안내하는 주민들을 따라 아파트옆 상가건물 앞에 들어서는 순간,내 눈을 의심했다.

주택가 건너편 상가건물의 맨 위층은 휘황찬란한 간판으로 장식된 숙박업소였다.학생들이 수없이 드나들만한 그 건물 바로 앞엔 또 다른 대형 호텔의 신축공사가 한창이었으니 주부들이 흥분할만도 했다.

이곳 초등학교 사내아이들의 관심은 우리 어렸을 때처럼 딱지 모으기가 아니다.

유흥업소 여종업원과 출장안마를 광고하는 선정적인 사진팸플릿을 모으는 것이다.밤새 주차시켜 놓은 차량의 앞 유리창에 수북이 쌓일 정도로 흔한 팸플릿들.

이것을 호기심 많은 우리 아이들이 등·하교 길에서 주워 모아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어떻게 상가건물 내에 숙박업소가 가능한가.

이유를 알아보니 다시 한번 참담했다.

''규제완화''가 개혁의 대명사이던 시점인 1998년 말 정부는 판매 및 영업시설이나 숙박시설 상호간에 다른 업종으로 변경하는데 대해 허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바꾸는 건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공무원의 이권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처럼 되어 있었고,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개정안은 별다른 고민없이 국회를 통과해 작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 당연한 결과가 1년 뒤인 오늘날 괴물 러브호텔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사명감없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교육자들의 무신경까지 가세해 학교 주변 2백m 구역 내에도 각종 유흥업소와 러브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어른들의 행진을 보는 것 같다.

이제 잘못을 알았으니 법과 제도는 당연히 보완될 것이다.

그러나 골칫거리는 이미 들어선 러브호텔들이다.

상당한 투자를 했으니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필부의 잘못과 입법자의 잘못은 그 결과에 있어 태산과 같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마음이 무거워진다.

잘못 만들어진 법을 놓고 입법자의 무책임과 무신경을 개탄하던 시절이 차라리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