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광고물과 간판 .. 권원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권원용

자본주의 나라 도시의 하늘은 ''질소와 산소,그리고 광고''로 구성돼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있다.서울시내를 걷다보면 온갖 간판들과 광고물의 범람으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어디를 보아도 행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 디자인이나 색상도 매우 원초적이며 구매충동과 소비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비교적 동네 고객만 상대하는 아파트 단지내 3,4층 상가도 사면을 간판과 광고물로 온통 도배해 건물의 외관과 형태를 도무지 알아 볼 수 없을 지경이다.심하게 말하자면 건물밖에 간판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간판속에 건물이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하기야 노후한 시가지에서는 건물의 추한 모습을 감싸주는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부동산중개소와 약국 등의 간판이 경쟁적으로 대형화되기 시작,이른바 ''광고 중상주의''나 ''간판 패권주의''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1995년 약간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서울시의 간판을 비롯한 옥외광고물 숫자는 대략 1백50만개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70%이상이 불법이다.

창문 이용과 같이 눈에 잘 띄도록 표시방법을 어긴 것들이 많다.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은 식당메뉴는 아마도 우리 나라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공공 공간인 보도까지 침범하는 각종 입간판과 위험스럽게 보이는 돌출광고물이다.

일반 주거지역에도 현란하고 자극적인 네온이 버젓이 사용되는가 하면 교통신호에 근접하여 점멸하는 경우에는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간판문화를 바꾸려면 현행처럼 ''멋대로''가 ''법대로''를 압도해서는 안 되겠다.

예컨대 일정규모가 넘는 건물 입면의 10%이상을 간판이나 광고문구가 차지할 수 없게 한다든가,선진국 도시처럼 한곳에 세련된 지주와 표지판을 세워 고즈넉하게 업소와 업종을 안내하는 방식도 좋을 것이다.

옥외광고물은 원색을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하고 정보전달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도시의 조형물로 취급돼야 한다.

그렇지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주변 지역과 조화될 수 있도록 도시계획 차원의 접근이 요망된다.

아직 고풍스러움이 남아있는 인사동 거리와 첨단업종이 북적대는 강남역 네거리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특히 간선가로는 도시의 미관을 좌우하는 만큼 건축물 못지 않게 광고물과 간판의 난립을 막아야겠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위임해 지역특성을 살리는 정교하고 세분된 규제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